싱크대 구석에서 엄마에게 혼나고 있는 손녀. 손녀엄마는 한 때는 내게 혼나기도 했던 내 딸이다.
혼내는 것이 너무 사리에 딱딱 맞게 지적질 하는 것 같아 좀 거북하고 이제 그쯤이면 마무리해도 되겠다 싶어 슬금슬금 주방으로 나가자 손녀 기어이 울먹울먹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함무니 ~~~엄마가 ...-
이럴 때 내 친정엄마는 쏜살같이 달려와 지금 손녀를 혼내는 엄마, 내 딸을 끌어 앉으며
-때찌 ! 누가 우리 솔이를 혼낸다고 지랄이야!-
나를 살짝 때리기 까지 하며 손녀를 낚아채 갔다.
-에고 이렇게 이쁜.. 솔이를...솔아! 니네 엄마 이 할머니가 혼냈다 -
그러면 딸은 좋아서 얼굴을 펴고 할머니 품에 폭 안겨서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엄마 애기 버릇 나빠져-
내가 불만스레 소리질러도
다 크면 아이가 알아서 하니 너무 잡도리 하지 말라고 훈계까지 하시던 친정엄마.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예전의 할머니식의 애정은 젊은 엄마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무식한 올드한 행동으로 매도당해 여차하면 오래동안 손녀를 못 볼 수도 있다
~함 무니 엉엉.. -
편들어 달라고 ,너무 절절하게 내 눈을 들여다보는 손녀의 눈ㆍ눈물가득한 눈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다.
원리원칙 주의자 mz 엄마인 내 딸의 논리를 이길 수 없다
놀라고 실망하는 손녀 얼굴.
-손녀야 미안혀! 할미는 엄마 못이겨 !-
손녀 앞에서 할머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제 손녀에게 나는 개떡이다. 말도 안들을 것이며..
라고 고시랑 거렸으나 딸의 태도가 맞고 당연하다. 어디까지나
손녀 육아의 핵심과 책임은 엄마 아빠이니까..
그러니 어쩌다 손녀의 육아에 참가하게 되어 글을 쓰나
그 육아는 어디까지나 엄마와 아빠가 바쁘고 급해
놓친 그 틈새 그 할머니 자리에서 본 스토리다
아이 하나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실은 마을이 아니라 온 우주가 아닐까, 이제 어린이 집을 다니게 된 손녀의 양육은 어린이집이라는 공적 기관과 엄마, 아빠, 외할머니, 고 모 가 총동원 된다. 이른 시간 출근하는 엄마가 아기 등원 시 입을 옷, 간단한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나가면 , 조금 늦은 출근이 가능한 아빠가 세수시키고 옷 입혀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등원을 시킨다. 오후 4시 퇴원부터 엄마 퇴근 6시 -7시까지 시간을 고모와 혹은 외할머니인 내가 교대로 돌봐준다.
노후의 집에 대해 고민이 많은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에서는 현명한 할머니가 되려면 절대 손자 봐주지 말라고 하지만.. 전부 다 싫다 하면 소는 누가 키우노? 사실 내 몸도 성치 못해서 타 할머니들처럼 완벽하게는 못 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 열악한 시절에 워킹맘으로 힘들고 안타깝게 보낼 때 친정 엄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때 꼭 품앗이로 나도 내 딸 육아를 돕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었다.
나보다 더 전문적인 딸의 일은 일분일초를 긴장해야 하는 일이라 더더욱 열심히 돕고 싶었다.
본디 시내로 이사를 계획했으나 잘 안되어 도시 외곽에 있는 내 거주지에서 왔다 갔다 하기로 했는데 힘들어 주이삼일은 딸 집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내향적이고 자의식 과잉인 나는 매사에 편하게 쉽게 가 없는 내가 생각해도 짜증 나는 캐릭터이다.
그런데다 자다가 코 골고 잠꼬대가 심한 할머니가 되니 여간해서는 남의 집에서 -아무리 딸 집 이래도 - 자는 경우가 없었다. 더구나 아파트처럼
남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 같은 내밀한 사적 기운이 가득 담긴 공간에 들어서면 왠지 나도 내 존재가 낯설게 느껴지며 불편해져 화장실 출입이 거북해지고 배설도 제대로 못했다. 아무튼
손녀의 방에서 잤다. 아니 , 손녀 침대는 엄마아빠 방에 , 손녀 장난감들은 거실로 가출하고 손녀의 책장만 남은 손녀의 서재에서 잠을 잔 셈이다. 손녀의 서재. 한 번씩 들릴 때마다 그냥 손녀가 들고 오는 대로 읽어주기만 했던 손녀의 서재를 새벽부터 일어나 비로소 꼼꼼히 훑어본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우리 조상들의 오랜 육아 지혜다. 세살 때 식습관이 평생 이용할 몸의 기본적인 대사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이라 중요하고 세살 때 언어 습관은 평생 타인과 소통할 기본적인 언어 소프트웨어를 까는 시기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곳이 손녀의 언어의 베이스캠프가 될 장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성하고 중요한 공간이다.. 손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주고 받다 보니 마치 20년 국어교사 시절로 되돌아 간 듯하다.그리고 그때는 미처 못보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그 깨달음을 드문드문 글을 올리고 있는 참에 사랑하는 손녀에게 자신 만의 배냇저고리 같은 언어들을 기록하여 책으로 내서 선물하면 어떨까 ? 세상은 넓고 육아의 지혜를 밝혀주는 책은 많다. 하지만 내가 제안하는 책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손녀 들의 언어를 기록해야만 완성되는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
평생 손녀의 언어소프트웨어가 되어줄 세살 언어를 기록하여 야 완성되는 책.. 이 세상에 하나 뿐인 책을 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