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고 분명하게 읽어준다. 가급적 인물들의 감정을 담아서 -
책이다!!!! 손녀의 책 들이 노는 공간 속에서 자게 생겼네.
크고 분명하게 읽어준다. 가급적 인물들의 감정을 싫어서 -크고 분명하게 읽어준다. 가급적 인물들의 감정을 싫어서 -
'엄마, 칼을 싱크대 아래 칼집에 넣으면 어떻게 해? 그곳은 진이 손 닿는 곳인데 다치면 어쩔라고.. 싱크대 위 칼집에 넣어요'
아 그리고 씻어놓은 반찬통에 물기가 남아있던데... 곰팡이 피지 마라고 일부러 채반에 받쳐놓고 말리는 중인데 마르기도 전에 들여놓으셨네요 '
딸 생각한다고 한 내 서툰 살림은 늘 까칠한 목소리의 딸 지적질로 되돌아왔다.
친정엄마가 딸 집에 가서 해야 할 루틴은 누가 가르쳐 준 바 없다. 대청소, 밑반찬 만들어 주기, 빨래., 육아라고 생각한 건 친정 엄마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행여 자신처럼 대가 없는 가사노동 주부로 전락될까 봐 나를 직장으로 몰아붙이고 퍼펙트하게 살림을 해주신 친정엄마. 난 직장 일만 잘하면 되었다. 일찍 가장을 잃은 친정은 김장 담그는 노동보다는 김장 경비를 대는 게 절실했고 내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김장 한번 내 손으로 해 본 적 없는 이상한 할머니가 되었다. 동생들 말이 맞았다. 출근한 딸의 빈집에서 뭐 해야 할까? 전화로 물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으란다. 언니가 하면 다시 손봐야 하니...
야!.. 정말 나는 쓸모없는 할머니구나.
책.. 자다가 다시 일어나 불을 켜고. 손녀의 서재를 꼼꼼하게 살핀다
딸 취향대로 전집류는 딱 한 종류고 다양한 책들로 구성되었다.
"너 이건 네가 고른 것 아니지?"
"어떻게 알았어? 나보다 먼저 엄마 된 친구 주연이가 골라준 것."
"하하 어쩐지. 이건 그 한 달에 한번 독립서점에서 선정해서 보내 준 책이지? 이건 네가 고른 책이고"
대충대충 건성으로 흔들고 다니다가 아파트 카드 키 분실한 사건으로 의기 소침해진 참이었다.
딸 집에서 내 존재가 미미해서 잔뜩 쫄고 기가 죽은 내 맘.
그런데 책 이야기를 시작하니 의기소침하고 청소하나 제대로 못하는 모자란 할멈이 사라졌다.
이상하고 독특한 빨강 안경 쓴 영국 할머니, 영국 추리소설 애거서크리스티 작가 작품 속에 나오는
외모는 남의 눈에 안 띄나 호기심 많고 추리력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무엇보다 정의로운
미스 마플양. 맞다 .그 마플양으로 변신하여 생기 있게 수다를 떠는 나를 발견한다.
할머니 궁금해요..라는 손녀 눈빛에 마음이 설레고
할머니 재밌어요 라는 뜻을 품은 손녀 웃음에 즐겁다. 잠시 마플 할머니 탐정과 개구쟁이 추피로 변신한다. 무릎에 앉아서 또는 이부자리에 같이 엎어져서 책을 읽는 시간은 행복했다. 그런데 웬 추피냐고? 대체로 유아들 책장에는 필수 서적으로 유아의 일상을 가르칠만한 책을 구비하게 마련인데 , 추피가 소풍을 가요, 추피네 가족이 이사를 가요. 추피는 무조건 싫대요...
손녀의 바른 일상생활 교육물이기 때문에 방대한 전집류의 책 시리즈가 되는데 그 책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다른 책들은 몰라도 이 일상생활 시리즈는 도서관에 빌리기보다 꼭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리즈가 되었든 양육자의 선택인데 딸은 추피 시리즈를 골랐다. 딸 다운 선택이었다. 이 추피가 손녀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심지어 곧 태어날 손녀의 동생 태명이 퍼니인데 이 시리즈에 나오는 추피 동생 이름이 퍼니이기 때문이다 손녀의 판타지인 비눗방울 목욕도 알고 보면 추피 시리즈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읽고 또 읽고 엄마가 읽어주고 아빠가 읽어주고 고모가 읽어주고 할머니가 읽어주고..... 수백 번 읽어주는데 크고 분명한 발음으로 읽어준다. 가급적 인물들에게 감정을 넣어주어서..
몇 백번을 읽게 되는 근본 책.
사람 감정이 일어나는 근원이 실은 장내 미생물의 조화로운 발효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래서 유아시절의 식습관이 아주 중요한데 그 베이스캠프가 주방이다.
인정받고 사랑하고.. 행복한 삶에 필수 조건이 언어 소통인데 그 언어들의 베이스캠프가 손녀의 서재라 생각한다.
같은 자매들이라도 늙어서 요양병원에 가서 까지 부정적인 언어를 써서 미움받고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언니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없이 살아도 긍정적인 언어로 병실 분위기를 훈훈하게 해서 전라도를 싫어했던 서울환자들의 마음을 바꾼 언니들도 있다
세 살 언어가 초등 중고교 학업성적, 수능시험 ( 이 손녀시대에는 다른 시험이겠지만) 연애능력... 직업 구하는 능력..... 죽을 때 요양병원 생활까지 간다고 생각하니...
손녀와 잘 놀아야겠다는 생각, 그러려면 기록하면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이다.
크고 분명하게 읽어준다. 가급적 인물들의 감정을 싫어서
어제도 추피와 같이
아장아장 걷다, 폴짝 뛰다 , 다다다닥 달리다 , 엉금엉금, 살금살금.
책 속의 걷는 동작에 대한 그림을 보고 행동을 손녀와 함께 하면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피곤하여 아주 곯아떨어져서 찍소리 없이 잘 잤다. 잘 자니 오랫동안 힘들게 했던 변비도 사라져 몸 상태가 아주 좋았다. 진짜 아이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노인이라는 것
내가 육아를 하는 게 아니라 손녀가 나를 육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 이막이 종 치고 내겐 이제 삼막이다
출근할 곳이 생겼다. 누우면 금방 잠드는 내 불면증 치유공간이며
내 생의 마지막 도서관이자, 손녀의 첫 도서관인 손녀서재로...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마플할머니와 추피는 처음으로 둘만의 언어로 소통했다.. 그런데 그 언어는.....
아름답다 ,사랑해 ! '응가'도 '쉬야'도 아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