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 작은 방-
본채 밑에 아랫채가 있습니다. 건축물은 자세히 살피면 건축주의 마음과 철학이 고대로
담깁니다. 건물을 다 짓고 나서 본채를 올려다보니 이상하게 정자가 편히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자 건물이 자신을 낯선 곳에 옮겨 놓았다고 화가 났나?
건물 기둥에 맘을 담아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며 속삭여 주기도 하고
정자 건물에 드나들 때마다 정자에게 합장하며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고압적인 본채 건물. 그러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
본 채 앞 마루에 올라서기만 하면 양반코스프레를 하게 하는 손님들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건축주의 로망이 건축물입니다. 건축주는 구한 말 끝물 선비였습니다. 자꾸 무너져 가는 유교정신을
지키고 싶어 권위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는 지도 모릅니다
"이마 찧으니 조심하세요"
아랫채는 집안일을 거드는 분들이 거주했던 행랑채와 문간채를 합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랫채 차실 손님들 , 특히 키 큰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시라고 늘 주의를 주어야 했는데. 본채 정자공간은 문들이 높고 큼지막하게 키 높이에 맞게 만들어 걸리작거리는 게 없는데 아래채 하인들의 거주 공간인 행랑채 문간채는 문을 작고 낮게 만들어 몸을 숙여 들어가게 만들었으니 참 씁슬했습니다
공간은 찬찬히 살피면 그 공간 을 만든 사람 드나들던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다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공간을 바꾸는 것이 또 사람입니다.
갓쓴 깐깐한 권위적인 선비의 공간은 많은 사람의 따뜻한 수다와 따듯한 차향으로 차츰차츰 유해져서
영부인에서, 젊은 연인들 , 조폭포스의 사람까지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다.
공간이 가장 넓어서 큰 방이라 부르는 공간입니다
대청과 더불어 제일 넓은 공간이라 가족모임이나 계모임 단체모임 손님들에게 안내되는 공간입니다.
큰 창에 호수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방인 데다가
방 앞에 나지막한 툇마루가 놓여있어서 모임 하다가 잠깐씩 일어나 나와서
툇마루에 앉아서 푸른 하늘, 녹색 잔디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주는 방이지요.
테이블이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있어서
휴일 같은 날, 자리가 부족해
두 팀을 앉혀야 할까 그냥 가시라고 해야 할까
찻집 식구들이 고민하는 방.
두 팀은 불편하다고 그냥 손님이 일어나서
가 버리셔서 난감하기도 하게 하는 방..
찻집의 딜레마... 매상을 위해서 찻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팀을 앉혀야 하지만
손님들의 쾌적함을 위해서는 한 팀만...
물론 손님이 많으시면 한 팀을 안내하지만
세분이 오 셨을 땐....
답이 없어서
휴일처럼 손님이 넘칠 때에는 자리 배정이 스트레스이기도 합니다.
결국 저렇게 커튼을 쳐드리는 방법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늘 맘이 불편했습니다
그렇지만 찻집공간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방이 기도 합니다.
실제 기에 민감하신 분이 측정도 했습니다.
저 흰 방석 놓여 있는 부분, 작은 다탁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가족모임에 먼 길 운전하고 온 가족들이
서울까지 돌아가기 전에
잠깐 눈 붙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잠깐인데도 피로가 싹 풀린다고........
초창기에는 상견례, 여자분들 계모임이 많았는데
갈수록 평일날 남자회사원 분들의 간단한 워크숍
이 많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방. 일명 신혼방이라 불리는 방으로
주로 연인들에게 주는 방으로 이 방은 항상 신혼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합니다
소개팅 첫 만남인 것 같은 커플은 무조건 이 방을 주는 데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아이 데리고 와서 이방의 추억을 이야기하시는 분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큰 방의 손님 중에 잊히지 않는 손님은 이희호 여사님이십니다
김대통령을 떠나보내시고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지역의 정치에 관여하시는 사모님이
모시고 오셨는데..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의자와 테이블을 부탁하셔서
준비해 드리면서 아! 한옥이 나이 드신 분에게는 고역일 수 있겠구나 깨달아서
찻집에 의자와 테이블 있는 공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유명한 분이 왕래를 하셨지만
그분들도 찻잔 들고 잠깐 힐링하러 어찌 보면 은둔하러 오신 거라 생각해서 그냥 모른 척 쉬다 가시게
해드렸는데 영부인님께서 사진 찍자고 먼저 권하셔서 찻집의 유일한 손님과의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월요일마다 혼자 오셨던 샛노란 티셔츠에 목에는 노란 굵은 금목걸이, 손에는 일수돈 받는 지갑을 한 손으로 휘감고 , 조용히 정말 조용히 앉아서 차 한 잔 하고 나가시던 분. 진짜 조폭이셨는지 그냥 코스프레였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조폭포스였습니다. 처음엔 약간 긴장하기도 했지만 말없이 조용히 제대로 차를 우려 마시고 한 나절을 쉬었다 가시던 모습이 인상 깊었던 그분. 한 서너 달 다니시더니 갑자기 사라지시던 분. 끝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지금 생각하면 손석구 닮은 그분이 가끔 생각이 납니다
쾌활 보이차 한 잔 드릴 걸.. 메뉴에는 없었지만 잘 어울렸을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