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찻잔 명상

-내 죽음의 근원과 마주하다-

by tea웨이

한때 홍대 앞 리브레 커피 맛이 궁금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각양각색의 커피를

배달받아 마셔본 적이 있었다

젊은 에너지들이 만든 커피답게 이 원두들은

잘 갈아 뜨거운 물만 부어주면

신맛, 단맛, 쓴맛, 탄맛, 과일맛.... 어느 맛 하나 사라지지 않고

오롯이 커피가 본래 품고 있는 맛이

싱싱하게 다 살아났다. 너무 정직하게 생생해서 첨엔

좀 낯설고 불편했다. 특히 신맛은. 그러나 어느 커피보다

야생 본래 고유의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져 바로 좋아졌다


스타벅스나 기타 브랜드 커피가 부드럽고 달콤하고

최상의 향... 보통 일

반 사람들이 커피에서 기대하는

판타지를 위해 맛의 조화 균형을 위해 뺀 것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커피였다.


명상도 그래야 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가능한 가공 하지

않는 상태로 정직하게 만나게 하는 것. 그게

설령 낯설고 두렵고 불편해서 피하고 싶더라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내 인생 첫 자객의 방문을 받았다

축하 손님으로 위장하고 온 자객이 백일잔치 시작시간

보다 조금 일찍 서둘러 등장했다.

잠자는 공주 동화 스토리에서는 초대받지 못한 서운함이

앙심으로 변해 공주님을

바늘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해코지를 하는 데


이 자객은 개인적인 서운함, 당하는 사람의 고통에

사적으로 공감 없이 담담하게 자객은 자객의 도리를 할 뿐이다.

운명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복수, 출생비밀, 사랑... 은 다큐처럼 밋밋하고 자연스러운 인생을

판타지로 만들기 위한 달콤하고 음흉스러운 사기.


이제 막 생(生) 쪽으로 첫걸음을 뗀 순진 무구한 얼굴

자객도 길고 가는 눈으로 순진무구하게 스윽 훑는다.

방긋방긋 웃던 갓난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처한 위험을

알아 몸을 움츠린다. 칼도 싸울 힘도 없는 몸을 간파하고 자객은

우아하고 따뜻한 애정의 맘을 담아

내 뺨에 키스하며 급소를 누른다.


얼굴에 열꽃이 화악 피어오르고 몸이 금방

불덩어리가 된다. 몸은 뜨거운데 마음은 얼음이다


공포, 부들부들 떨리며

그래도 살려고 끈질기게 꿈틀거리며

몸은 식히고 마음은 풀어낸다.

어린 내게 유일하게 남은 건 젖 먹는 힘뿐.

버티다 전생의 검법 기억까지 더듬어

뽑히지 않으려는 잡초처럼 생의 땅을

붙들었으나 아직 튼튼한 어른 몸이 실리지 않는 검법은

자객에게는 너무도 쉬운 상대.


견디다 못해 땅을 붙들던 손을 막 놓으려는 순간

새끼 까치들이 머무는 둥지에 입맛 다시며

굼실굼실 들어가는 까치독사를 본

엄마 까치의 짧고 급박한 목소리

깍깍깍깍....

눈이 번쩍 떠졌다.


어린아이들의 무기인 울음, 울음을

백설공주가 입에서 독사과 뱉어내듯이

온몸으로 토해냈다.


사람들이 불 나간 차디찬 윗목에 버렸던

나를 다시 따뜻한 아랫목에 눕혔다


자객은 곧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무사히 목숨은 건졌으나

곧.. 다시

라는 말은 내 몸이 안전지대가 아닌

야생의 초원지대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언젠가는 끝내 나보다 강한 것들의

하루 식사로 마칠 몸.


강자에게 당하지 않을 몸을 만들기 위해 달리고 뛰고

격투기를 배우고 아예 죽지 않는 신선이 되기 위해

불로초를 생채식하고 심해 속의 상어간유까지 먹고 도인체조운동을 하고


그러다 평생을 이 문제로

생사를 건 깨달은 스님의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北邙山) 무덤이요.

부귀 문장 쓸데없다

황천객(黃泉客)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경허스님 참선곡-


을 읽고 풀 끝에 매달린 이슬, 바람 앞에 등불인 피할 수

없는 몸의 한계에 포기했다

그동안에도 자객들은 때가 되면

접시물에라도 몸을 빠트려 목숨을 거두어 갔다


도피를 시작했다

주거지를 바꿔서 자객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그러다 들킬만하면 피하고 또 추적의 시간이 들킬만하면

피해서... 결국 인적 드문 호수까지 흘러왔다.

숨어있는 장소로 인적 드문 호숫가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선택인지 들키기 전 까지는

몰랐다. 숨기에 좋은 곳은 인파로 복작이는 저잣거리이다

골목이 있으면 금상첨화. 인적 드문 곳은 오히려

사람이 돋보인다


늙고 병든 몸,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 생각한 순간

-바보처럼 나만 몰랐지 남 눈에는 이미 보였다는데-

이미 자객은 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자고 있는 중이다.

언제 일어나 나를 공격할지 몰라

내 찻잔 검법을 다듬고 있는 중이다.


찻잔 검법?

몸이 쫓기는 동안 마음의 우물 안에는

불안이라는 뱀 한 마리 똬리 틀고

살기 시작했다. 이 마음속의 뱀 한 마리를 잊기 위해

자주 들른 장소가 카페였다.

잠시 구질구질하고 불안한 현실을 망각하고 위안받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차 한잔. 찻잔이 잠시

마음속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찻잔에 필이 꽂혀 더.. 더.. 독하게 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찻잔을 찾아 헤매다가

육지의 끝, 바다의 시작인 해변가에서 은둔해 있는

찻잔을 발견했다.

그 찻잔은


도피가 아니라 찻잔 검법을 알켜 주었다



내 마음속의 뱀과 부실한 내 몸을

도망가지 말고 용기 있게 대면할 것


자꾸 피하고 싶고 두렵지만


내 삶은 다시가 없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한 생방송이다

내가 방심하면 모든 게 소멸이다


일기일회 (一期一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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