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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주 Nov 26. 2024

여행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카트만두

연인과의 재회

카트만두를 도착한 지 삼일차인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매일같이 하루를 보내던 장과 3개월 정도 떨어져 오랜만에 다시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라는 기간은 굉장히 힘들고 느리게 지나가는 듯하면서도,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짧고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와 보내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서 보내는 나의 순간은 소중했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며 그와 만날 생각을 하니 살짝 떨리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는 항공기 안에서. 오랜만에 나의 심장이 조금 떨리는 듯하면서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 울컥하기도 하고 긴가민가했다. 여태껏 내가 한 번 이미 가봤던 나라들만 방문하다가, 처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 여행자의 뱃속에서 움틀거리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호스텔에서 지내고 싶어.” 


우리는 며칠도 되지 않아 감격의 눈물은 잊어버리고, 로맨스가 아닌 막장 드라마처럼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카트만두는 먼지로 가득했고, 바빴다. 모든 것들이 제의였고,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길거리에 붙잡혀 원하지도 않는 정보와 이야기의 늪에 갇혔다. 아직은 이 삶의 흐름을 모를 때였다. 사람들과 함께 에너지를 교환하는 것 말이다. 어떻게 반응할지 여행자로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위압되었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카트만두에서 4일이라는 시간을 보내자 매연 가득한 듯한 바쁜 공기가, 어느 순간 복잡한 거리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신당을 찾게 되고, 좁은 골목들마다 숨겨져 있는 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안다. 행복하지 않을 때, 만족하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를 지금 같이 있는 사람에게 한다는 것은 순간을 절대로 슬기롭게 보내는 것이 아니다. 


떨어져 지낸 기간, 서로가 서로에 대한 다른 기대를 해서였을까. 어찌 되었든 우리는 고유의 허상과 생각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보낸 시간의 분위기와 온도가 달라서였을까. 


조용한 마을에서 근처에 거주하는 가족들을 위주로 만나며 조용하면서도 바쁜 시간을 보냈던 그. 나는 다양한 에너지 가득한 도시에서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우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마침 한국을 방문한 친구들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강렬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읽었던 자전적 소설 속 주인공처럼 기상천외한 경험을 하게 되고, 미친 사람들이지만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였을까. 


그럼에도 그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기다리다 보면, 조바심 내지 않고 지내다 보면, 찾지 않아도 다가올 것이라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제는 네팔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또 한 번의 3개월이 지나있다. 그리고 이 3개월 동안 우리는 기상천외하고 미친 듯한 사람들을, 특별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들. 삶을 예술로 만들고 있는 그들을 통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듯 마법과 같은 시간을 보내었다. 


나는 이 중에서 어떠한 일도 예상하지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여행 철학


하루는 여행 철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 세계를 각자의 이름으로 빛을 내고 있는 별나라 여행자들. 우리는 삶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인 이곳, 별나라 여행을 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하고, 공유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와 신화가 태어난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그 속에서 평화 속 깨달음을 찾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있는 곳 속에서 빛을 내고 있으니,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는 법이다. 텅 비어 있음은 또한 꽉 차 있음과도 같은 것이다. 속임수와 같은 기대와 생각이라는 틀에서 갇힐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 것을 인정하고 삶 속에 뛰어드는 것. 여행하는 기분은 그런 것이 아닐까. 


최근에 들기 시작한 생각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나는 어딘가에 속해 있지도 않은 존재로서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도 같다. 내가 지어낸 트라우마와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도 한다. 

여자여서, 한국인이어서, 남자친구가 백인 유럽인이라서, 체구가 작은 사람으로서, 다양한 관념으로 뭉쳐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나를 지표로 하는 것이 아님은 진솔한 여행의 길과 여행자들 앞에서 속시원히 까발려진다. 작은 민들레꽃씨처럼 작은 알알이 말이다. 하지만 이 씨앗은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새 삶을 시작한다. 과정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내 몸을 맡기듯 던져본다. 삶이 나를 이끄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출처 Jean 

(인스타그램@jeanbat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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