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언니는 이제 어디에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돼."
얼마 전 지나간 나의 생일날, 친한 동생이 그룹톡에 남긴 말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제는 히말라야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나와 파트너의 이름을 소개하자, 둘 다 각자의 나라에서 꽤나 흔하게 들을 법한 이름을 가졌다고 전했다. Jean ‘장발장의 장’과 ‘민주’,
우리는 각자의 낮과 밤이 다른 제법 먼 나라에서 날아와 마치 철수와 영희처럼 길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풀타임 여행자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네팔의 도시 포카라에서는 산과 호수가 있어 마음이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phewa lake 주변으로 크게 길게 한 길로 이어져 있어, 지내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는 친구들을 길 가다가 만나게 되고 , 알지 못했어도 자꾸 마주쳐서 알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방식이다.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니 그곳이 명당이 되고, 그곳이 맛집이다.
독일에서 온 여행자, 알렉스를 오늘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는 home,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티베트 문자를 가지고 두 번째 타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금 여기저기 떠도는 homeless인데, 그렇다면 나의 home은 나 자신이 아닐까 싶어."
이곳이야 말로 내 마음과 몸이 편안한 '집'이라고 느껴지고, 같이 사는 옆집 친구들이 마치 모두가 이유 있게 만난 것처럼, 여러 장면으로 연결되어 이 순간이 묘한 '데자뷔'처럼 연출되는 기분도 든다.
상처가 비슷한 사람들, 트라우마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이끌린다고도 한다. 그 말은 우리 또한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 상처를 서로 치유하기 위해, 또는 이미 그 상처를 통해 배움을 얻는 그 길에 서서 비슷한 곳과 비슷한 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네팔에서 다양한 베테랑 여행자분들을 만남으로써 여행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배움인 것을. 나 또한 풀타임 여행자가 된 듯하다. 이들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가의 의미는 없어진다.
호주에서의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은 마치 '나'라고 믿고 쌓아 올린 것들을 비우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여러 모습의 '나', '너', '우리'가 되어 모두의 이야기를 탐구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ABC, 그리고 서킷, 두 차례의 트래킹을 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종종 한국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나 등산애호가 어르신들로부터 가끔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는다.
“유튜브 합니까?”
“아뇨.”
“ 영상은 여행 다니면서 찍고 다니고 있어요. “
“ 그렇다면, 여행 전문가이시군요”
"자유로운 삶을 살고 계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어느 질문에도 '네'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직업 유튜버로 말하기에는 아닌 것 같아도, 여행 전문가는 될 것도 같다.
투어 가이드라던가,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 전문가는 못되어도, 로컬 주민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가정집에서 거주하며 낯선 여행지가 어느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되기도 한다.
아마 여행자와 주민, 이 사이의 삶을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큰 행운이지만, 그 안에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있다.
트래킹 하는 도중 얻은 대나무 막대기는 나의 등산스틱이었다.
따로 부러워할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이드 없이, 몸집만 한 큰 배낭을 들고 안나푸르나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열정 가득한 마음이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베테랑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이곳, 히말라야 아래에서
나는 다시 풀타임 여행자가 되어 별나라 이곳저곳에서 온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다.
사진 출처 Jean
(인스타그램 @jeanbat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