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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18. 2023

형님이 다녀갔습니다

"행복에도 무게가 있다"

형님이 다녀갔습니다.

오늘은 형님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글자들이 흐릿해지더니 편지지가 얼룩졌습니다.   



      

동생,


바닥 잠, 잘만 하신가. 딱딱하지.     


지난번 면회실에서 본 살 빠진 얼굴에서 동생이 뭔가 비워내고 있구나, 생각이 번득 스쳐 갔다네.     

그렇다면 딱딱한 바닥이 더는 떨어질 곳 없는 반석일 수 있겠다. 

비워낸 몸이 깃털 같아 바닥도 부드러울 수 있겠다. 



동생 눈이 많이 밝아졌더군.

밖에서 분주할 때 볼 수 없던 눈빛이었지. 


떨어지지 않고서야 어찌 들어 올리는 구원이 있겠는가. 

구원은 오직 고통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일 거야.



머지않은 훗날 동생의 육과 혼을 쏟은 글이 잉태될 거라는 믿음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지.


우리의 후반기 삶이 한때 꿈꿨던 생태적이고 단순한 삶으로 조금 더 빨리 회귀할 수 있다면 순전히 동생 덕이네.     




'행복에도 무게가 있다.‘     


높이 허공에 떠 있어 불안해 쉬 살아갈 것만 같은 가벼운 행복 말고, 떨어져 떨어져 바닥이 제 높이인 생명들과 더불어 사는 무거운 행복.     


바닥에 고인 물바다와 땅속뿌리를 부여잡고 있는 흙대지와 그것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과 덤벙덤벙 사는 떨어질 걱정 없는 바닥 삶.     


그렇게 동생과 살아간다면 생과 사의 구별도 거리도 한자밖에 안 되는 바닥. 잘 살다가는 이승일 것이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 이제 뭔가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살아봐야지.

나는 밖에서 동생은 안에서 그 시작을 해보세.


좋지!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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