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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만절필동
Jan 06. 2025
끝을 보고 지금을 자른다, 초(初)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에 새날을 기대할 일이 없는 게 감옥의 일상일 듯합니다.
수인(囚人)들에겐 출소 전날만이 특별할 것 같습니다.
나의 감옥의 일상은 독서와 일기 그리고 당신에게 매일 편지 쓰는 일입니다.
반복(反復)이 ‘같다’는 아닙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늘 같은 것은 아닙니다.
매일 같은 거리를 달린다고 해서, 운동량이 늘 같은 것도 아니지요.
매일 읽는 책의 문장도 다르고, 날마다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글도 늘 새롭습니다.
모든 시작은 항상 새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남은 생의 첫날이다’라는 마음으로 어제를 시작했고, 어젯밤 누웠던 자리에서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도 잊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그 마음을 반복할 겁니다.
그러니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을 압니다.
처음과 시작을 뜻하는 초(初) 자를 파자(破字)하면 옷(衣)과 칼(刀)입니다.
‘옷에 칼을 대는’ 일이 아니라, 옷을 만들기 위해, 곧 재단하려고 ‘옷감에 칼을 대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시작은 단순한 ‘처음’이 아닙니다.
시작은
그 끝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끝의 새로운 완성을 위해 지금을 자르는 일입니다.
‘감옥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라는 문장을 자주 봅니다.
형(刑)이 확정될 때마다 고개를 떨구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떨구지 않았습니다.
형기(刑期)는 불치병 환자에게 내리는 생의 남은 기한이 아닙니다.
완치의 기한입니다.
그러니 끝을 미리 내다보고 지금까지의 나를 자르는 시작(初)이어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욕적정(離欲寂靜)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네요.
욕(欲)을 떠나는(離) 것으로 진정한 마음의 고요에(寂靜)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욕(欲)에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세속적 욕망과 집착, 탐욕만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려는/하고 싶은’ 모든 의욕과 의지를 내려놓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도가(道家)의 무위(無爲)와 닮아 보입니다.
여기 와서 당신에게 휴정(休靜)이라는 이름을 새로 주었지요.
힘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내가 가진 모든 마음이었습니다.
고요조차 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불교책들을 읽다가 적정(寂靜)을 보았습니다.
지난날들이 하루도 쉴 수 없었던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때마다 쉴 수 없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밖에서의 소란보다 내 안에서 들끓던 마음이 더했던 것을 이제는 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욕(欲)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것은 먼지입니다.
가만있으면 일었던 먼지는 가라앉습니다.
‘일어남’(欲)을 떠나고 내려놓음(離)으로 적정(寂靜)에 이르는 길이 눈을 감으면 보입니다.
먼지는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먼지를 내려놓는 일(爲)이 아니라,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일(無爲)입니다.
모든 티끌의 분진이 사라진(滅)
적멸(寂滅)의 정적(靜寂)이 적막(寂寞)과 한적(閑寂)함이라면,
나는 나의 형기(刑期)의 새날마다
감옥을 암자(庵子) 삼아 동안거(冬安居), 하안거(夏安居)를 지내며,
홀로 적적(寂寂)함을 수심(修心)의 화두(話頭)로 삼을지 모를 기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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