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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Sep 25. 2021

캐내디안 랍스터의 기억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딜레마


엄마는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씩씩하게 견뎌냈지만, 항암치료를 받은 후에는 식욕부진, 탈모 등 일반적인 부작용을 제외하고 기억력이 현저하게 악화되었다.

여전히 정확한 진단이나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항암치료를 위해서는 기억력을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꾸준히 항암제를 투여 받고, 꿋꿋이 견뎌냈다.

항암치료 후에는 식욕도 떨어지고, 조심해야 하는 음식이 많아서 엄마의 체력을 위해 무엇을 사드릴지 고민이 되었는데, 다행히 엄마는 랍스터를 거부감 없이 맛있게 드셨다.


하지만 랍스터의 가격이 가격인지라 어느 날에는 랍스터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엄마에게 괜한 짜증이 났다.

기억력이 많이 쇠해진 엄마가 오늘 먹은 랍스터의 맛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까...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엄마에게 짜증을 낸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는 머리를 굴려가며 부단히 애를 썼는지 모른다.




삶은 전부 기억이다. …… 지나가는 매 순간만 빼고.


테네시 윌리엄스가 <우유 열차는 더 이상 여기에 서지 않는다(The Milk Train Doesn’t Stop Here Anymore)>에서 우리가 지금 외현기억으로 칭하는 것을 묘사하면서 썼듯이,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 삶이 전부 기억이라는 생각, 잡을 수 없을 만큼 재빨리 지나가는 단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기억이라는 생각. 정말로 삶은 전부 기억이다. …… 지나가는 매 순간만 빼고.”

- [기억을 찾아서] / 에릭 캔델 지음 / RHK알에이치코리아 / 333쪽 중 발췌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픈 상태가 되고,

잊혀지고 싶은 것이 잊혀지지 못할 때는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사람이 견뎌낼 수 있거나 불편해도 넘길 수 있는 상태를 정상범주라고 본다면, 질병과 범죄는 정상범주를 벗어난 극단의 위치에 있는 상태라는 점을 공유한다.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기억과 관련한 질병과, 사생활의 유출과 같은 기억과 관련한 범죄는 질병과 범죄 이전의 상태로 온전히 복귀할 수 없고, 근원적 해결이 실질적으로 불가하다는 점을 공유한다.


기억과 관련한 질병과 범죄가 이처럼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없고 현재의 삶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과 기억력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그에 따라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그렇기에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외침을 들을 때나 가끔씩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문구를 기억해 낼 뿐, 대부분의 현재는 슥 지나가도 그만인 순간이 되어버리곤 한다.


엄마와 캐내디안 랍스터를 먹으러 간 과거의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오늘 나와 함께 맛 본 눈 앞의 음식을 기억하지 못하고, 음식의 맛도, 나와의 시간도 기억하지 못할텐데, 이 비싼 랍스터를 먹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되뇌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날의 감각들을 움켜쥐지 못했다.




기억 이전에 감각이 있다.


몇 가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에서 외현 공간 기억과 암묵기억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현기억은 등록과 되살림을 위해 선택적 주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신경 활동과 외현기억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한 우리는 주의 집중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적 주의 집중은 지각과 행위와 기억에서, 궁극적으로 의식적 경험의 통일성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널리 인정된다. (중략) 내적 표상이 외부 세계의 모든 세부를 모사하지 않는 것과 감각 자극만으로 모든 운동 행위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주로 선택적 주의 집중 때문이다. 매 순간의 경험에서 우리는 특정 감각 정보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다소) 배제한다 만일 당신이 이 책에서 눈을 들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을 본다면, 당신은 더 이상 이 페이지에 인쇄된 단어들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다. 또한 방의 장식이나 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나중에 누군가가 당신이 경험한 바를 보고하라고 요구하면, 당신은 이를테면 벽에 작은 흠집이 있었다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 방에 들어왔다는 것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 [기억을 찾아서] / 에릭 캔델 지음 / RHK알에이치코리아 / 345, 346쪽 중 발췌


감각이 기억보다 앞서 있기에 감각의 강도는 기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에 영향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의 감각-맛, 향기,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 미소, 함께 나눈 이야기-에 집중하고, 음미하면 그 감각이 아로새겨져 뇌의 시냅스 어딘가에 진하게 저장될 것이다.


기억이 지속되는 시간에 비례하여 감각하는 순간의 가치를 평가할 순 없다.

나는 이처럼 지극히 단순한 명제를 나 스스로에게 머리로 설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더 이상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릴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엄마가 랍스터를 먹으러 가자고 하신 이유는 랍스터를 맛있게 먹는,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훗날 알게 되고 나서야,

오로지 오랜 시간 기억되어야만 그 가치가 있다는 가성비적인 사고-어쩌면 지극히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착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육아는 너무 힘든데, 너무 행복하다.

육아가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휴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롯이 나 혼자 향유할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답답함에 짜증이 나곤 한다.

특히나, 배우자의 협조 없이 홀로 오롯이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마땅히 그래야 하듯, 나와 아내는 공동육아를 한다-.


한 팔로는 선호를 안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sns를 하던 시간들도 어쩌면 그러한 답답함을 해소해 보겠다는 가소로운 생각-잠깐 sns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때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훌쩍 커버리는 선호를 보며-선호는 태어난지 205일 만에 첫니가 났다!-, 때론 너무 힘든 그 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너무 힘든 순간이 흘러가는 만큼 너무 행복한 순간도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선호와 함께 하는 시간 만큼은 순간의 잊지 못할 감각들에 집중해보자고.

선호가 훗날 나와의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기억 이전에 감각이 있고, 그 감각을 나와 선호가 함께 음미하고, 그 음미한 순간을 내가 기억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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