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
2월 16일, 작은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병으로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큰 누나에게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이번이 4번째 폐렴이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횡행한 이후로 첫 번째였다.
큰 누나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듣기로 큰 누나는 태어난 후 잘 울지 않았다고 했다.
아기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잘 울지 않는 아기는 한 없이 예쁠 수밖에 없다.
엄마, 아버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아버지가 되었을테니 부모님에게 큰 누나는 순하디 순한 착한 아기였을 것이다.
다소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엄마와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아기가 장애가 있으니 시설로 보내는 방법도 고민해보시라’는 나름의 진단과 처방을 들었다고 했다.
큰 누나가 태어났던 시절은 지금이랑 많이 달랐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엄마와 아버지는 큰 누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생전에 나한테 “아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성격이 이렇게 강하지 않았었는데, 큰 누나 낳고 나서 많이 변한거 같아.”며 얘기했었다.
지금이라면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하며 꼬옥 안아주었을텐데...
아버지는 그토록 기다리던 손주 소식에도 선호가 건강하게 태어날 때 까지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다며 깊은 불안함으로 기쁨의 감정을 억눌렀다.
2018. 6. 12.
큰 누나에게 첫 번째 폐렴이 찾아왔을 때,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녘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회색 콘크리트 위에 달팽이 한 마리가 힘겹게 기어 가길래 그나마 촉촉한 풀로 옮겨줬다.
잠시 기지개를 켜고 나니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고, 큰 누나도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2018. 12. 22.
큰 누나가 두 번째 폐렴 증상을 보였다. 좋아질거라 생각하고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잠시 산책을 했고, 숙소로 돌아와 엉엉 울어버렸다. 아내는 괜찮으니 집으로 가자고 했다.
큰 누나는 한참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항생제를 거의 최종단계까지 썼고, 증상이 잡히지 않으면 앞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시간이었고, 다행히 큰 누나는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운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
이후 한 차례 폐렴이 더 발생했지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히 조치가 취해진 덕분에 다행히 3번째 폐렴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증상이 호전됐다.
출산 예정일이 2주가 채 남지 않은 때였다.
출산휴가에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회사일을 최대한 많이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시 큰 누나에게 폐렴이 찾아왔따.
큰 누나는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라 기존에 입원치료를 받았던 병원의 응급실에 입원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다행히 중환자실이 구비되어 있는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작은누나에게 연락을 받은 다음 날, 큰 누나 면회를 갔다.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한의학을 손에서 놓은지 7년이 다 되어 가지만, 큰 누나를 보고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 누나에게는 상황을 설명하고, 일단 하루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
다음 날 작은 누나가 큰 누나 면회를 갔고, 지금 당장 종합병원 응급실로 전원하지 않으면 큰 누나가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서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했고, 음압병상 또한 자리가 확보되어 있어야 했다.
수원에 위치한 종합병원에 전부 전화해보며 격리병상을 확인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고, 코로나가 유행한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환자 전원 절차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이 차가웠고, 마음은 녹아내렸다.
절망의 터널을 지나 기적처럼 격리병상이 확보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비로소 작은 누나와 나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죽어가는 일이 오늘날보다 훨씬 공개되어 있었다. 그 당시 조건으로 보았을 때 다른 식으로 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수녀와 수사라면 자기 방에 혼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계속 함께 지내야 했다. 그러한 주거 형태가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출생과 사망-인간의 다른 동물적인 측면과 마찬가지로-은 훨씬 공개적이었고, 따라서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훨씬 사회적이었다.
- <죽어가는 자의 고독>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 김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5쪽
과거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끔은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태도이다. 헨리 8세의 대법관이었던 토머스 모어는 평생 경애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던 죽어가는 아버지의 침상에서 그를 안고 입맞춤을 했다고 전해진다.
- 같은 책 / 22쪽
절망의 터널 속에 격리된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던 나는 녹아내린 마음을 양손에 담지 못한 채,
격리된 슬픔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6단어로 사람을 울릴 수 있냐는 말에 헤밍웨이가 쓴 6단어 소설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작자미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육아는 실전이고, 이제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선호를 기르며 상념에 빠진다는 것이 가끔은 사치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출생과 죽음 사이에는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있다.
마치 코로나가 종식된 것처럼 느껴질만큼 화창했던 지난 5월 19일, 오랜만에 아내, 선호와 함께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모든 것을 멈춰버렸던 코로나를 뚫고 분수가 음악에 맞춰 멋지게 뿜어져 나왔다.
선호만한 아기들이 유모차를 타고 있었고, 어린 아이들이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며 뛰어놀고 있었다.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아기 신발이 당근마켓에 유난히 많이 올라오는 시절이라면,
육아가 실전이라 하더라도 조금은 멀리 바라보며 근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만, 육아는 실전이라지만.
코로나가 얼른 종식되어 선호와 선호의 친구들이 새신을 신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