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사람은 눈이 되고 눈은 사람이 됩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소한(小寒): 양력 1월 5일경. 절후의 이름으로 볼 때 대한이 가장 추워야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은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날씨가 조금만 푹해져도 미세 먼지가 득세하는 겨울입니다. 이번 겨울은 평온보다 따뜻했다가 또 엄청 추워졌다 변덕이 심합니다. 변덕 심한 이 겨울도 입동을 시작으로 소설, 대설, 동지를 거치고 새해를 맞이하고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에 이르렀습니다. 소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번 소한은 많이 춥지는 않았어요. 추위 대신 자주 찾아오신 눈과 미세 먼지로 시골집은 온통 흰 세상입니다.
뿌연 미세먼지가 하늘을 빼곡히 채워, 눈을 한가득 안은 땅과 구분이 안돼서, 멀리서 보면 비슷한 풍경인 이 사진을 보셔요.
지구는 둥글고 지구가 잡아당겨주는 힘으로 산도 나무도 우리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니, 지구의 시점으로 보면 거꾸로 세상이 좀 더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어요. 마음이 시릴 땐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위, 아래가 거꾸로 뒤집혀도
사실 별 일 아닌 걸요.
마음이 시릴 땐, 지구의 시점으로.
겨울은 게으른 정원가도 당당해지는 너그러운 계절입니다.
자연에게 텃밭과 정원을 온전히 맡기고 '지켜보는 일'이 정원 일의 전부인 이상, 게으를 수가 없어요.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눈이 녹으면 녹는 대로, 생명이 웅크리고 있는 땅에서는 얼음이 작은 물이 되어 흐르고 잔 바람이 숨을 쉬며 우연한 때를 기다립니다.
이때 사람은 눈이 됩니다.
눈 덮인 땅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디디며, 온전히 땅과 하늘을 맞닿아 느끼며 걸어요. 마을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어제 자연이 한 폭 그려내신 하얀 길과 하얀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나와 눈의 경계가 없어지며, 나는 눈이 됩니다.
겨울의 걷기는 얼굴에 닿는 명쾌한 바람과
발에 짚히는 눈의 푹신한 질감으로 선명해요
이때 눈은 사람이 됩니다.
쌓인 눈을 한 켠으로 치우다 보면 눈은 사람이 됩니다.
일부러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결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뭉쳐진 눈은 한두 번 굴러가며 커지고, 큰 눈덩이는 조금 더 작은 눈덩이로 이어지고, 큰 덩이 위에 작은 덩이를 올려놓으면 어느덧 사람입니다. 밭에 쌓인 눈을 조금만 뒤적이면 나타나는 나뭇가지와 솔방울로 손과 눈과 입을 덧대어 주면 당장이라도 내게 말을 걸 듯해요.
눈사람과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요?
눈도 사람도 현대 과학이 규명한 몇 종류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은 수소와 산소를 가장 많이 품고 있을 거예요. 시간이 가면 눈은 녹고 사람도 녹아 땅으로 스며들어요. 눈과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아, 뭉친 눈을 눈 사람으로 부른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우연히 빚은 눈 사람이 친근하고 또 한 편 애잔합니다.
겨울비
두텁게 쌓인 눈이 이대로 영원할 것만 같았어요. 정말 여러 차례 쌓였고 추위와 바람으로 다져졌거든요.
그런데,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처음엔 겨울비가 눈 위에 작은 자국만 남기다가 비가 한 밤을 지나고 다음 날까지 내리자 조금씩 눈을 녹이더니, 마술쇼처럼 잔디 마당이 다 드러났어요. 이 참에 눈 사람은 며칠 살지 못하고 녹아버렸어요.
그런데 또 며칠 후, 큰 눈이 내리더니 금세 겨울 왕국 풍경으로 되돌아갑니다. 자연이 며칠 만에 그려낸 두 풍경을 한번 보셔요. 이 일을 사람이 해내야 한다면? 많은 장비와 전기와 돈과 힘이 들겠지요!
1. 눈 사람 만들기
2. 눈 쌓인 마을 둘레길 산책하기
3. 온전히 시절을 느끼며 자연과 가까워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