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멜버른에서 상모를 돌리다 보면 많은 한국인 분들을 만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생긴다. 특히 이곳 멜버른으로 짧게 여행을 오신 50대, 60대의 아주머니, 아저씨 그룹을 만나면 더욱 그러하다. 그분들은 내가 마치 한국에 두고 온 자신들의 아들내미를 닮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타국에서 고생이 많다며, 마주 잡은 두 손을 쉽게 놓아주시지 않으셨다. 그분들께서 나누어주셨던 응원과 격려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린다.
한 아주머니께서는 여행할 때 먹으려고 어제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것이라며 배낭에서 바람떡이며 경단이며, 바리바리 싸온 떡을 몇 팩씩 꺼내 주시기도 하셨다. 타국에 살면 한국 음식은 잘 못 먹고살았을 것 아니냐며 말이시다. 부침개며, 만두며, 감자탕이며, 꽁치조림이며, 호주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 음식을 잘해 먹는 나였지만, 아주머니들께서 기꺼이 떡을 나누어 주실 때는 최대한 가엾게, 그리고 공손하고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 떡은 멜버른에서 정말로 구하기 힘든 음식이니 말이다.
등산 모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하신 여행객 아저씨들은 이 무더위에 상모까지 돌리려면 더워서 두 배로 힘이 들겠다며, 배낭에서 소주병부터 꺼내고 시작하셨다. 일단, 이거 한잔 마시면서 목 좀 축였다가 이따가 또 공연을 하라고 말이다. 하하하하.
물론, 한국에서였다면 나는 소주를 냅다 받아 마셨을 것이다. 대학교 풍물패 공연 때도, 공연 중간중간에 관객석으로 난입해 막걸리 한잔씩을 얻어 마시고 다시 공연에 합류하곤 했었으니 말이다. 후후훗. 다른 치배들은 한창 연주에 바쁜데, 나 혼자 관객들에게 막걸리를 얻어먹으며 공연 분위기를 띄우는 장면이, 이제 와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렇다. 풍물패의 공연은 이처럼 공연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깝다. 그리고 그 경계 또한 모호하다. 무대 위의 공연자는 언제라도 무대 밖의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렇게 공연자의
손에 이끌려 무대 안으로 들어온 관객들은 또 한 명의 새로운 공연자가 되었다. 그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공연자도, 관객도, 공연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 요소였다.
하지만, 이곳은 호주의 멜버른이었다. 나는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내시려는 아저씨를 얼른 만류하고는, 멜버른의 음주 정책에 대해 충분히 설명드렸다. 이곳 멜버른은 워낙에 술에 엄격한 도시여서, 거리에서는 술병만 쥐고 있어도 바로 경찰서로 연행되는 도시가 이곳 멜버른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 그제서야 아저씨들도 오케이, 오케이 하시며 소주병을 배낭에 도로 집어넣으셨다.
오늘은 한국에서 여행 온 관광객분들을 만나, 바람떡이며, 경단이며 맛있는 것을 얻어 먹었다고 한국에 계신 할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할머니께서는 너는 어떻게 외국 나가서도 남들에게 그렇게 잘 얻어 먹고 다니냐고 하신다. 누구 손자인지는 몰라도, 어디에다 갖다 놓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신다. 아프리카에 갖다 놓아도, 사자를 잡아먹든, 코끼리를 잡아먹든, 아니면 굼벵이를 주워 먹든,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 것 같아 걱정이 하나도 안 되는 아이라고 하셨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