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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Jul 02. 2021

사람들은 저마다의 패션 철학이 있다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사람들은 저마다의 패션 철학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 사람의 패션이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곧 대변한다고 한다. (예컨대, 체육 선생님은 늘 체육 선생님처럼 입는다. 한문 선생님께서는 늘 한문 선생님처럼 입는다. 가정 선생님은 늘 가정 선생님처럼 입는다.)


호주에서 몇 개월을 살면, 특별한 능력을 하나씩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얼굴형이나 얼굴 생김새를 몰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의 패션 스타일만 알면 된다.


울프컷 또는 샤기컷인데, 스키니한 핏의 바지를 입은 남자는 일본인 친구일 확률이 높다. 하얀색 긴팔티에 원피스를 레이어드로 입은 여자는 일본인 친구일 경우가 많았다. 나이에 비해 조금 올드한 카라티를 입고 있는 남자라면 중국인 친구일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남자를 구별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청바지를 입고 있고, 검은색이나 하얀색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있다면 99%가 한국인 친구였다. 혹여나 댄디컷에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다면, 그 친구는 100% 한국인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종종 한국인이 아닌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다. 엉덩이 라인이 허벅지까지 늘어진 배기바지에, 푹 파인 브이넥을 즐겨 입은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과 거리가 멀었다. 머리의 한쪽 옆면은 반삭으로 밀고, 나머지 반대편은 길게 내버려 둔 나의 헤어스타일은 일본인의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었다. 간혹 가다 중국인 관광객 아주머니들께서 거리낌 없이 나에게 중국어로 길을 묻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나의 패션은 중국 청년들의 그것과도 거리가 있었다.


헤어스타일만 보자 하면 어디 몽골지역의 시골총각과 같았다. 그래서 새로운 술자리에 가면, 언제나 나는 재미를 위하여 나의 국적을 숨기고 영어로만 이야기하였다. 같은 한국인 친구들도 나의 외국인 연기에 꿈뻑 넘어가고는 하였다. 그 친구들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던 것이 나는 중국의 고전소설(초한지, 수호지, 서유기, 삼국지)을 좋아하고, 대만의 영화와 음식을 좋아하며, 일본의 J-pop(M-Flo, AKB48)과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동아시아 어느 나라의 문화를 이야기해도, 나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느 한 한국 동생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형이 여기 호주까지 와서 꽹과리 치고, 상모를 돌리는 것 보면 형은 분명 누구보다도 한국적인 사람인데, 생긴 것만 보면 중국 사람인 것 같고, 말하는 것만 보면 오타쿠 같아서 일본 사람 같고, 좋아하는 음식만 보면 또 대만 사람인 것 같다고...... 하지만 어쩌면 내 안에는 그 친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나라들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생텍쥐페리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고, Walking dead와 Americanl Idol을 즐겨 보지만, 좋아하는 축구팀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예전 헤어스타일을 재미있어했고, 또 그리워했다. 반은 유난히 짧았고, 또 나머지 반은 유난히 길었던, 지극히 언밸런스했던 헤어스타일!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고민하는 소설 <달과 6펜스> 같았다고나 할까? 모범생 이미지의 탈을 벗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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