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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Jul 08. 2021

나는 대만의 노을이 여전히 보고 싶고, 여전히 그리웁다

양 취통의 <타이중 기차역>

고등학교 때는 가능한 한 많은 문제집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풀어 해치우는 게 나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대학교 때는 가능한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을 빨리, 그리고 많이 읽어 해치우는게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행도, 단기간 내에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하였나 보다.


<어린 왕자>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책 한 권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읽는 것도 그 나름대로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대만의 타이페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어린 왕자>와 같은 도시다. 그야말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들여다보고 싶은 도시! 지난 사 년 동안 타이페이만 세 번을 찾은 나에게, 나의 한국 친구들은 혹시 타이페이에 비밀 여자 친구라도 숨겨놓은 거 아니냐고 놀려댄다.


하지만 나는 타이페이를 방문할 때마다 늘 새로운 타이페이만의 매력에 매혹되고 만다. 첫 번째 여행이 대만 영화를 주제로 떠난 여행이었다면, 두 번째 여행은  대만의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의 포커스는 대만의 그림책과 미술작품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의 그것처럼, 타이페이를 길들이고, 또 타이페이에 길들여지고 있다.


타이중이라는 도시는, 마치 작은 타이페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이페이만큼이나 노을이 아름다웠던 도시! 타이페이만큼이나 야시장이 매력적이었던 도시! 하지만 타이페이보다 더 천천히, 그리고 더 느리게 움직이던, 이 작은 도시를 나는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오슝이나 타이난 같은 대만 남부 도시도 구경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나는 다음 여행에도 타이페이와 타이중에서 벗어나지는 못 할 것 같다. 네 번, 다섯 번을 읽어도 늘 새로운 <어린 왕자>처럼, 이 도시들도 조금은 더 곱씹고, 또 곱씹어 보고 싶다.


<타이중 기차역>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타이중에서 보았던 노을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소설 속 어린 왕자가 어느 날은 왜 마흔네 번이나 노을을 보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나는 대체 타이페이와 타이중의 노을들로부터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어디에 무엇을 잃어버리고 온 것일까?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만의 노을이 여전히 보고 싶고, 대만의 노을들이 여전히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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