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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Apr 25. 2021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자신의 성격도 바뀐다?!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나의 일본인 친구 한 명이, 자신이 요새 대학교에서 논문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라며, 알려준 사실이 제법 흥미로웠다. 자신이 느끼기에 동아시아인 들은 자국의 언어를 사용할 때와 영어를 사용할 때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영어를 사용할 때,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100% 동감하였다. 왜냐하면 당장 나부터가 한국에서보다 호주에서 더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해있었으니 말이다.


한국인 누군가가 나에게 나의 성격을 물어본다면, 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가사를 빌려 나를 표현했을 것이다.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 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그렇다, 나는 점잖은 사람이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맡은 바 임무에 책임을 다하여, 주위의 신뢰를 쌓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듬직한 아들, 누군가에게는 우산 같은 선배, 누군가에게는 예의 바른 후배 등의 역할들을 수행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호주에서 알게 된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나를 크레이지 가이라고 불렀다. 시시때때로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로 개그와 말장난을 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내가 점잖은 선비 같았다고 하면, 멜버른에서는 천방지축 개구쟁이 같았다.
나의 한국어가 중저음의 쫙 깔리는 바리톤 같았다고 하면, 나의 영어는 고음의 천장 같은 소프라노 소리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의 성격도 한국에서는 중저음처럼 차분히 가라앉았고, 호주에서는 소프라노처럼 통통 튀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성격이 바뀌든, 안 바뀌든 간에, 나의 성격은 어쨌거나 호주에서 좀 더 밝아진 건 확실해 보였다. (어쩌면 호주에서의 나는, 일부러라도 더 적극적이고 활발해지려고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갈 용기도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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