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내가 버스킹을 즐겨했던 장소는 스완스톤 스트릿 중에서도, 차이나 타운의 입구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구역이었다. 그곳은 다른 장소보다 보도 블록 위의 빈 공간이 넓어, 내가 뛰어다니며 공연을 하기에 공간 상으로 불편함이 없었다.
나의 공연 장소 바로 옆 블록에는 대만에서 온 “위니”라는 버스커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며, 색연필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버스킹이 있는 날이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녀의 그림을 구경하곤 하였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색연필이라는 도구가 이렇게 따뜻한 색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하루는 그녀가 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작은 갈색 봉투 하나를 건네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놀랍게도 상모를 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종이 위의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서, 설마 저 캐릭터가 내가 맞을까 싶다가도, 상모를 돌리고 있는 그 모습이 당연히 나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누군가로부터 그림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 고맙다는 표현을 어떻게 더 해야 할지 모르고, 땡큐쏘머취, 땡큐쏘머취만 계속 되풀이했던 것 같다.
(원래부터도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긴 했었지만) 그녀로부터 그림 선물을 받은 이후로, 나는 완전히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녀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그림 작품을 올릴 때마다 <좋아요>와 <하트>를 부지런히 눌러 그녀의 작품 활동을 응원하였고, 물론 지금까지도 그 응원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색연필화를 주로 그리던 그녀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림 스타일을 바꾸었다. 인물화를 중심으로 사랑, 우정, 행복 등의 주제를 그리는 그녀의 그림에는, 그녀의 색연필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것처럼이나,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호주 멜버른의 <거리 위의 댄서>는 이제 여기 한국에서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나의 그림을 아끼고 좋아해 주시는 지인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나의 그림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인분들의 특별한 사연과 스토리를 녹이고 녹여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부터가 그 그림에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들이 완성될 쯤이면, 멜버른에서 만났던, 어느 한 예술가의 이름이 언제나 떠오른다. 위니, 위니, 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