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다현 작가님의 <고래의 아침>
고래는 바닷속에서 사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고래가 수면 위로 자신의 몸 전부를 드러내는 일은 드물다. 이 그림에서도 고래는 분명 자신의 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은 채, 저기 저 파란 바다 아래에 그려져 있다. 작가님의 작품 설명 속 표현을 따르더라도, 이 작품 속의 고래는 분명 “바다 위로 떠오르는 고래”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의 눈에는 자꾸만 바다의 위쪽에서 고래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바다 위쪽으로 보이는 것은 분명, 하얀빛을 뿜어내는 강렬한 태양과, (수면 밑의 고래에 의해) 힘차게 일렁이는 파도, 그리고 노란
빛의 해바라기, 이 셋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에는 자꾸만 이 그림으로부터 파란색 배와 하얀색 등을 가진 커다란 고래의 형상이 보인다.
송다현 작가님께서는 <어둠>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자신의 인생에 있어 인내를 통해 성찰하는 하나의 시간이요, 과정이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 빛과 어둠을 가장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캐릭터로 어린 왕자를 그리게 되셨다고 한다. 말하자면, 송다현 작가님께 <어둠>이란, 애벌레가 나비로 탈피하기 위하여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치, 그리고 번데기의 시간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고치와 번데기의 그 모습은 마치 생명이 다 한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시간들이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어둠을 겪지 않은 애벌레는 결코 나비가 될 수 없다!
어린 왕자는 빛과 어둠에 편견이 없을 것이라는 송다현 작가님의 작품 설명에 나는 매우 동의한다. 어린 왕자 소설 속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가.
“아저씨에게는 내가 아픈 것처럼 보일 거야. 조금은 죽어가는 것처럼 보일 거야. 응, 그럴 테지. 그러니까 보러 오지 마. 올 필요 없어......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마음이 아플 거야.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아저씨도 알겠지만, 내가 사는 별은 이곳에서 너무 멀어. 이 몸을 갖고 갈 수는 없어. 이 몸은 너무 무겁거든. 이건 단지 벗어두는 낡은 껍질에 불과해. 낡은 껍질을 두고 슬퍼할 건 없어.”
어린 왕자에게 드리운 어둠! 그 어둠은 소설 속 비행조종사에게도, 그리고 이 소설의 애독자인 나에게도 참으로 버겁고 힘든 고통이다. 소설 속 어린 왕자가 어둠의 존재를 모른 채, 평생 밝은 빛과 함께 살면 좋겠지만, 어린 왕자가 그에게 드리워진 어둠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별 B-612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분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나의 딸들만큼은 온실 속 화초처럼, 인생에 어느 작은 굴곡 없이, 평온하게, 그리고 평탄하게 산 청년에게 시집보내겠네. 뭐, 자네 역시 그동안 그리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은 잘 아네. 그리고 나 역시 자네가 이겨온 그 시간들에 대하여 대단히 대견스러워하고 있어. 인생의 어둠을 겪고, 그것을 이겨낸 존재들에 대해 나는 존경과 박수를 보내네. 물론 나 역시도 지금껏 그리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네. 허나 자네도 결혼하고, 딸을 낳아 보면 조금은 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울지라도, 내가 매우 사랑하는 나의 딸들에게만큼은 이 세상의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만 보여주고 싶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 험하고 더러운 것들은 내가 전부 다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딸들에게만큼은 예쁘고 좋은 것들만 선물하고픈 그런 아비의 마음을 말이야. 그러니 내가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보다,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이를 사윗감으로 더 선호하는 일에 대해 자네가 일절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나는 마음에 상처도 많고, 어둠도 많은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여리고, 더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한 척, 더 강인한 척 애써 나를 포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린 왕자>라는 친구만큼은 나의 지금 이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고 쉽게 다가와주리라 믿고 있다. 그 친구만큼은 빛과 어둠이라는 것에 대하여, 편견이 없는 친구이니 말이다. 나도 이 작품 속 소녀처럼이나, 어린 왕자와 해 구경을 가고 싶다. 일출도 좋고, 일몰도 좋다. 어린 왕자와 함께라면 나는 마흔네 번의 해넘이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바다 위쪽으로 보이는 것은 하얀빛을 뿜어내는 강렬한 태양과, 힘차게 일렁이는 파도, 그리고 노란빛의 해바라기, 이 셋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에는 자꾸만 파란색 배와 하얀색 등을 가진 커다란 고래의 형상이 보인다. 그 고래는 해바라기의 눈을 가졌다. 그리고 그 고래는 굵고 낮은 어느 중후한 목소리로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넨다.
“어둠을 겪지 않은 애벌레는 결코 나비가 될 수 없어! 어둠을 겪지 않은 애벌레는 결코 나비가 될 수 없어! 어둠을 겪지 않은 애벌레는 결코 나비가 될 수 없어! “
송다현 작가님의 <고래의 아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