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다현 작가님의 <태양의 아침>을 보고.......
겨울에 눈이 오면, 나는 늘 우리 집 마당에 눈사람을 만들었다. 영하의 추위에 나의 두 손이 이미 빨갛게 얼어버렸더라도,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나의 눈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뿌듯하고 힐링이 되었다.
내가 눈사람을 만든 다음날이면 눈사람은 어김없이 발길질에 망가져 있었다. 커다란 대문과 높은 담벼락이 있어 아무나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그 범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눈사람에 남은 발자국! 그 발자국으로 짐작컨대 나의 눈사람을 부순 범인은 우리 집 2층에 사는 윗집 꼬마 아이의 소행이 분명하였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다음 해에도 윗집 아이는, 내가 눈사람을 만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눈사람을 발로 밟아 부수었다. 윗집 꼬마애를 불러다가 한 소리를 하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는 아마도 지금껏 태어나서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음이 분명해. 이 추운 날씨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꽁꽁 언 두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사람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남이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저리 쉽게 발로 부수지는 못할 거야. 자신의 엄마, 아빠와 눈사람 한번 만들어 본 적 없는 저 아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참으로 딱하고 불쌍한 아이인 것 같아.’
눈사람을 부수는 자는 부수는 행위를 통하여 오로지 자기 혼자서만 행복하다. 하지만 눈사람을 만드는 자는 눈사람을 만듦으로써 타인과 함께 행복하다. 눈사람 그 자체로 타인에게 행복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 그는 분명 스스로 자신과 타인을 위한 행복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서수영 작가님의 책에서 읽은, 릴케의 글귀 하나가 떠오른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꽃 속에서 타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을 반짝이는 것이다.”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은,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의 행복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파괴하는 자는 창조하는 자의 행복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사랑을 받기만 하는 자는 사랑을 베푸는 이의 행복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을 해보자. 받으려고만 하는 그런 사랑 말고! (어째, 지금 가수 <녹색지대>의 노랫말이 생각나는 것은 그저 나의 기분 탓이려나?!) 그래, 우리 한번 태양과 같은 사랑을 해보자.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저 태양처럼, 우리 한번 사랑을 해보자.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고도 오히려 그 빛이 넘쳐나는 저 태양처럼, 우리 한번 사랑을 해보자.
누군가에게 빛을 주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빛이 나야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스스로 사랑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결코 남에게 줄 사랑의 여유분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부디, 태양처럼 사랑하고, 태양처럼 살아가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빛들을 반짝여보자. 저기 저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처럼!
송다현 작가님의 <태양의 아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