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작가님의 작품, <무제>
아마 중학교 때였나 보다.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대 히트를 쳤다. 그 인기는 국내를 넘어, <겨울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드라마 속 “욘사마”와 “지우히메”를 떠올리며, 일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남이섬을 찾는 일본의 중년 여성 관광객들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며, 나는 과연 이 신드롬이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일인가 싶었다. (뭐, 중학생 때의 나는, 금산이라는 시골 지역에만 갇혀 살았고, 소풍, 명절, 가족행사와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인근의 대도시인 대전을 나가는 일 조차도 거의 드물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였다. 그러니 드라마 하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는 일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 하고도 남았다. 그만큼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나는 대만의 청춘 로맨스 영화에 빠져 살았다. 3박 4일의 여름휴가를 온전히 <청설>, <나의 소녀시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등의 영화 촬영지를 찾아 대만의 도시 이곳저곳을 여행하였다. 대만의 영화 촬영지, 그곳에 가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현실 속 나에게 다가와 영화 속 명대사를 한 마디씩 건네줄 것만 같은 묘한 설렘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20년 전, 욘사마와 지우히메를 그리며 한국의 남이섬을 찾았던 일본의 중년 아주머니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로 해외로의 여행길이 막힌 지금, 나는 더 이상 대만에서 나의 여름휴가를 보내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대만의 영화 촬영지를 쫓아다니지 않는다. 물론, <겨울연가>의 흔적을 찾아, 욘사마와 지우히메를 만나러 경기도 가평의 남이섬을 여행하지도 않는다. 나의 모든 관심사가 <어린 왕자>에 집중되어 있는 오늘날, 나는 어린 왕자가 머무르고 있을 법한 공간과 장소만을 찾아 여행을 다니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어린 왕자를 찾아 떠난 곳을 읊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않고, 서울, 부산, 대전, 인천, 일산, 고양, 가평, 제주도, 가파도와 같은 지역의 이름을 댈 것이다. 그만큼 나는 지금 어린 왕자라는 존재에 심하게 취해 있고, 또 깊게 빠져 있다. 어린 왕자의 흔적을 찾아, 우리나라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파도만큼이나 어린 왕자의 스토리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가파도 속 어린 왕자”의 존재에 대하여 알려주신 이영렬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뿐이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사랑은 바람과 같아서,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피부로는 느낄 수 있다.”
나에게는 “가파도의 어린 왕자”가 앞서 언급한 문장의 바로 그 “사랑”과도 같은 존재이다. 가파도의 어느 곳에 가도 어린 왕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가파도를 두 번 방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가 가파도에 머물며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너무나 잘 느낄 수 있다.
가파도의 어린 왕자는 바람과 같아서,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피부로는 충분히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응, 아무렴 그렇고 말고! 중요한 것은 본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