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마르고 마른 사랑이어도 쉬이 잘라낼 수는 없다

by 김정배

장미 전정을 하고 바클을 깐다.


새로운 싹이 나기 전에, 묵은 가지들을 쳐내고 정리해야, 다가오는 봄에 더 아름답고 풍성한 장미를 피워낼 수 있다고 한다. 만사에 잔 정이 많은 나에게는 장미의 가지 하나, 하나를 자르는 것도 곤혹이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한 그루, 한 그루의 장미들은 얼마나 애를 써서 가지를 뻗었을까. 얼마나 애를 써서 싹을 틔웠을까. 또 얼마나 애를 써서 잎을 피웠을까.


가을비와 겨울바람에 꽃도 지고, 잎도 지고, 이제는 엉성한 가지 줄기만이 남았다. 하지만 꽃도 없고, 잎도 없는 앙상한 가지라고 하여, 그 가지를 무심하게 싹둑싹둑 자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그 가지들은 그냥의 가지들이 아니다. 그 가지들은 지난봄의 진달래와 소나무 향을 기억하고 있고, 지난여름의 개망초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가지들이다. 가지 하나, 하나가 나의 지난 손길과 정성과 땀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오랜 친구들이다.


이제는 시들어버린 관계라고 하여, 그 사람과 그간 나누었던 편지들을 쉬이 자르고 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마르고, 마른 사랑이어도 쉬이 그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묵은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


지난 영광이 그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였다고 하여도,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묵은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허리까지 자란 키는 무릎 높이 정도로 잘라주고, 굵은 줄기 3개를 제외한 나머지 잔 줄기, 잔 가지들은 전부 솎아준다.


처음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 줄기, 한 줄기씩 잘려 나간 가지들은 어느덧 수레 3개를 가득 채웠다. 장미들이야 미용실을 다녀온 어린아이처럼, 덥수룩했던 그간의 머리숱이 제법 가벼워 보인다. 케케묵은 나의 마음도 장미들처럼이나, 전정가위로 시원시원하게 잘라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쉬이 자르지 못하는 나의 어둠과, 쉬이 자라나지 않는 나의 마음은 오늘도 여전히나 한 겨울일 따름이다.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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