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네 폰 베레츠킨의 <비극적 분위기>
그가 얼마나 힘들게 이 곳에 왔는지 나는 안다.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넘지 못한다는 저 산을 오직 가방 하나만 짊어진 채로 넘어왔으니 말이다. 그는 나에게 주려고 가져왔다며 가방을 통째로 건넸다. 나는 기쁜 마음에 그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가방에는 썩은 사과와 배만이 들어 있었다. 나에게는 늘 좋은 것만 주려고 하는 그이기에, 나는 그가 나에게 썩은 과일을 주려고 가방을 건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가 하는 일은 늘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애초부터 나쁜 남자였으면 기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는 늘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 모든 것이라는 것들이 차라리 온전한 것들이라면 다행일 텐데, 그가 하는 일들은 늘 2% 모자란다. 나에게 주려고 가져왔다는 이 과일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나를 주려고 챙긴 과일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배고플 때 한 입 베어 물려고 가방을 확인했다면 과일이 썩었는지, 아닌지는 쉽게 확인할 수는 있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의 정성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의 정성을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자기 몫도 제대로 못 챙기는 사람이 누구 몫을 챙겨 준다고 이러는 건지........ 나는 그의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그는 또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다 잘 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겠지. 나는 그런 그의 그 동정을 구하는 표정이, 그 능구렁이 같은 행동거지가, 그리고 그 생각 없음이 싫다.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