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구스타프 피셰르의 <걷다>
멜버른의 플린더스 스트리트(Flinders street)는 참 길었다. 우리 집이 플린더스 스트리트의 제일 가장자리에 있었고, 플린더스 역이 이 거리의 제일 중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걸음으로 15분에서 20분의 시간이 걸렸다.
내 집이 플린더스 스트리트 근처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약속 장소를 플린더스 역으로 잡곤 하였다. 사실, 나에게 가장 좋은 약속 장소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써던 크로스 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플린더스 역으로 향하는 그 걸음을 주저하지 않았다. 플린더스 역은 내가 멜버른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사랑했던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마치 플린더스 스트리트에 서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로의 왼편으로 나란히 줄지어 선 플라타너스! 그리고 그 바로 옆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의 플린더스 역이 야라강을 따라 기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저기 왼쪽 저만치에 아쿠아리움도 보이는 것 같다. 도로 오른편으로는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들에 서로의 풍채를 뽐내고 있다. 때마침 저기 저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53번 무료 순환 트램! 여기에서 10 여분만 더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오래된 펍이 하나 나오는데, 그 펍을 지나 고기 향 솔솔 풍기는 케밥집을 지나고 나면 내가 머무는 아파트가 곧 나타날 것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멜버른의 플린더스 스트리트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나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저 여인에게 살짝 눈웃음을 보인다. 여인도 나의 눈웃음에 부끄러웠는지 볼이 살짝 빨개진 것 같다. 야라강, 플린더스 역, 멜버른의 친절한 사람들, 멜버른의 어느 것 하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