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 vs 비보이

by 김정배

(내가 극구 부인할지 언정), 멜버른의 사람들은 나를 <거리 위의 댄서>(dancer on the street)라고 부르곤 한다. 우리나라 전통판굿도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하나의 외국 전통춤으로 보일 테니, 그들이 나를 춤꾼으로 부르는 것도 굳이 틀린 말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내가 사람들에게 댄서로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내가 춤에 일체 소질이 없는, 타고난 몸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 위의 춤꾼이지만, 춤을 하나도 추지 못한다. 나의 감정을 하나의 몸동작으로 연결시키는 일에 나는 많은 부담감을 느낀다. 노래방에 가서도, 언제나 나는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서서 박수만 치는 타입이다.

춤에 대한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리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가끔씩 나를 난처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바로 호주의 비보이 친구들이 걸어오는 춤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춤과 음악이라는 매개체 하나만으로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제법 낭만적으로 들린다. 내가 춤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다는 가정에 한해서 말이다. 하하하.
이 날도 자기 자신을 콜린이라고 소개한, 젊은 비보이 친구로부터 합동 공연을 요청받았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배틀 형식으로 서로의 춤 솜씨를 뽐내자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관객분들이 열화와 같은 환호와 함성을 보내오면, 나는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이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된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각종 기술들을 모아 모아, 어떻게든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 나의 연풍대와 번개상이, 비보이들의 토마스, 윈드밀과 같은 화려한 기술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비보이들과의 이 댄스 배틀에서 나는 그들을 쉽사리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관객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다.

그렇게 비보이들과 같은 무대 공간에서 서로의 춤에 박수를 치며,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고 있노라면, 나중에는 왠지 모를 동질감과 동지애를 느낀다. 우리는 서로의 국적도, 나이도 다르다. 성장해 온 배경도, 관심 있어하는 분야도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된다, 하나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춤이라는 장르야말로, 세계 만국의 공통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오늘날까지 춤 울렁증이 있다. 춤을 못 추는 댄서 입장이 되다 보니, 골 못 넣는 스트라이커의 심정에 대해 격하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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