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인이라는 친구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콜롬비아 출신이라는 그녀는 나의 상모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나의 공연을 몇 곡이나 지켜보던 그녀는, 이윽고 나의 상모를 써 보아도 괜찮은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Sure. Why not?!”
그녀에게 두건을 씌워주고, 채상의 턱끈을 매어주고, 백끈으로 이마를 고정시키는 동안에도 그녀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나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당신은 한국에서 이 춤을 전공한 건가요? 당신은 이 춤을 배우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나요? 저도 이 모자를 쓰면, 당신처럼 종이로 원을 그릴 수 있나요? “
나는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이 춤은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전통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운 춤이라고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였다.
“상모를 돌리는 원리는 심플해요. 그러나 실제로 상모를 돌리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심플하지 않을 거예요. 모자에 장착된 막대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당신은 그저 무릎을 굽혔다가 펴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모자 위의 막대는 가속이 붙어, 다시 위로 올라갈 것이고, 막대 끝에 붙은 종이는 그 원심력에 의해 스스로 원을 그리게 될 거예요.”
한국어로 해도 어렵기만 한 설명을, 영어로 직접 하려니, 평소에 알던 쉬운 영어 단어도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 머리 위에 보이는 막대만 보세요. 이 막대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느껴지자마자, 바로 점프를 하는 거예요. 네, 바로 지금이에요, 점프! 자, 다시 한번만 더 해볼게요. 하나, 둘, 셋, 지금이에요, 점프!”
상모로 첫 번째 원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무릎을 굽혔다가 펴야 했는지를, 나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가 쉽게 원을 그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그녀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상모와 실랑이를 벌였고. 끝내 원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상모를 한번 돌려보려고 애를 쓰는 그녀의 미소가 마치 어린아이의 표정처럼 해맑아 보여 기분이 좋았다.
“혹시 이 모자 중에, 모터가 달린 모자도 있나요? 이 모자에 모터가 달려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당신처럼 잘 돌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나의 모자에 모터를 달고 싶었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나는 나의 모자가 아닌, 나의 입에 모터를 달고 싶었다. 이런 때, 나의 입에 모터를 달 수 있다면, 나는 구구절절, 휘황찬란한 언변으로 인기를 확 올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