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잘하네
1. 오늘의 시작, 고등어구이와 흰 죽
벳푸에서의 셋째 날.
아침부터 고등어구이, 소시지, 계란, 그리고 따끈한 흰 죽까지.
집보다 더 정성스럽게 챙겨 먹었다.
아이들도 밥을 잘 먹고, 우리도 오랜만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아침.
든든히 배를 채우고,
며칠 전부터 눈에 밟히던 그곳—
벳푸공원 옆 전망대에 가보기로 했다.
2. 전망대는, 의외로 무서웠다
전망대까지는 계단이 아닌
조금 작은 반원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겉모양이 살짝 조악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휙—” 하고 올라가서
그 자체로도 꽤 무섭다.
3층에서 내리면
4층 전망대까지는 짧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자체는 오픈형은 아니었지만,
양옆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그 ‘유리 벽 + 고도감’ 조합 때문에
겁이 많은 사람들에겐 꽤 아찔한 구조였다.
남편은 3층까지만 올라오고
“나는 여기까지만…”
계단 앞에서 멈춰 섰다.
하윤이는 “아빠 왜 안 와~” 하며 깔깔 웃었고,
나는 아이 손을 꼭 잡고
그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함께 타고 올라온 일본인 부부 한 쌍도 비슷했다.
아저씨는 “무리무리… 무리데스…”
계단 앞 벽에 찰싹 붙어선 채
꼼짝도 못 했다.
그에 비해 아주머니는
표정 하나 없이 조용히 올라오셔서
잠깐 풍경을 보더니, 말없이 다시 내려가셨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벳푸는
온천 김과 바다, 산이 어우러진 도시.
바람은 거칠었지만, 풍경은 고요했다.
조금 무서웠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담배 냄새에 살짝 당황했지만
전망대를 내려오고, 배가 고팠다.
마침 작은 카페 레스토랑이 눈에 띄었다.
밖에는 ‘오늘의 런치 1,500엔 ’이라고 칠판에 쓰여 있었다.
아이들도 슬슬 지쳐가는 타이밍이라,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들어선 순간—
담배 냄새가 확 들어왔다.
벽에 밴 듯한 짙은 냄새에
순간 ‘애들도 있는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일단 자리에 앉았다.
주방 쪽을 힐끗 봤는데
긴 염색머리, 올블랙 옷, 강한 아이라인, 목이
다 쉰 목소리
엄청난 포스의 할머니 셰프.
처음엔 ‘어… 좀 무서운데.. 잘못 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4. 근데… 이 집, 진짜다
A, B런치를 하나씩 주문했다.
먼저 나온 건 크림수프.
한 입 먹고, 우리 부부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냥, 진짜 잘하신다.’
재료는 단순한데 깊은 맛이 났고,
뜨끈한 수프가 속을 부드럽게 풀어줬다.
시윤이는 이유식을 먹고
하윤이는 “맛있다~” 하며 수프를 싹 비웠다.
메인은 일본풍 함박스테이크와 오이타명물 토리텐(닭고기튀김), 그라탕과 무채샐러드
함박스테이크는 진짜 엄청 맛있는 떡갈비였다.
토리텐은 평소 튀긴 음식을 잘 안 먹는 남편도
극찬할 정도로 맛있었다.
시소드레싱이 올라간 무 샐러드는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줬다.
디저트로는
초코케익과 커피젤리가 나왔다.
우리끼리 “여기 진짜 다시 오자”라고 말하게 됐다.
6. 단골들의 식당에, 우리도 잠시 스며들었다
우리말고도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직장동료 세명 , 여자 혼자 온 테이블
할머니들 모임 6명
다들 단골인걸 한 번에 눈치챈 게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 사람 이름으로 주방에 전달했다.
“유미짱~ A 런치래요~”
“아오키상은 빵으로~”
서로 잘 알고 익숙한 모습이
정겨웠다.
식당 안엔 얼마 전 열렸던
12주년 기념 파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풍선, 손글씨 포스터, 작은 사진들.
아 여기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공간이구나
우리는 여행자였지만
그 따뜻한 공간 안에
잠시나마 조용히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