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늦은 저녁 드라마 한 편의 마지막 장면에 눈물이 터진다.
어떤 기억이 되살아난다.
벌써 16주기, 긴 시간이 지났지만 늘 마음 기억은 그 자리이다.
그 해 여름, 갑작스러운 장마가 시작된 시기였다.
비가 무섭게 오던 목요일, 한참 근무 중일 오후 낮시간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아빠가..."
장마 빗소리에 오빠의 목소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억수같이 내리던 장마 빗소리 , 회의실 차장 밖으로 흐르던 물, 후덥지근하던 회의실의 공기, 그리고 드문드문 들리는 오빠의 목소리, 그 날의 기억이 16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일이 있기 전 주, 친구 엄마의 빈소를 찾기 위해 지방에 내려갔다.
서울 와 회사 생활 2년 차가 되갈 때 즈음의 나는 집에 내려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명절이 아니면 아니 붐비는 명절을 피해 가기도 했던 집이었고, 일 년에 두, 세 번 가족을 찾았던 것 같다.
지방에 내려갔던 그 주, 엄마가 하시던 가게 공사가 있었다.
고향에 간 김에 아빠와 함께 새로운 가게에 넣을 집기들을 같이 사러 여기저기 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빠와 함께 반나절을 보내며 가게 집기를 고르고, 간판을 맞추고, 아빠랑 내가 좋아하던 시장 자장면을 사먹고 참 오랜만에 아빠와 긴 시간을 보냈다.
입맛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아빠랑 나는 잘 맞는 구석이 많았다.
늘 책 읽고 운동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시는 아빠 모습이 참 좋았고, 아빠와 대화를 통해 답을 얻는 일도 좋았다. 늘 고민을 상담해주시고 답을 찾아가게 이끌어주셨다. 그렇게 아빠는 늘 내게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었다.
살아가며 생각해보니 그렇게 긴 시간 아빠랑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자라면서 고모에 삼촌까지 함께 살았던 우리 집은 늘 북적이고, 모두 같이 여행을 가고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낼 일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가끔 출장을 오시던 아빠랑 공항에서 배웅을 하며, 한두 시간 아빠와 시간을 보내며 아빠와 단둘이 만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긴 시간을 단둘이 함께 한 날은 그 날이 처음이었고, 그게 마지막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 서울로 돌아왔고 며칠이 지난 오후 오빠의 전화를 받았다.
비가 무섭게 오던 날, 아빠는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 날 오후 친구분들과 외곽에서 식사하러 가셨다고 한다.
외진 곳에 세워두신 차로 이동한 아빠는 아무도 없는 시골길에서 혼자 쓰러지셨고 누군가 발견해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어떻게 공항까지 갔었는지 기억은 없다.
회사에서 나와 공항으로 그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늘 자기 관리를 잘하시던 아빠, 혈압이 조금 높을 뿐 평소에 운동으로 건강관리도 잘하시던 편이었다.
쓰러지셨지만 곧 일어나실 거라 기대하며 아빠를 만나러 갔다.
중환자실에 면회시간, 아빠와 대면했을 때 절망스러웠다.
돌아오시지 않을 것 같았던 느낌, 그 얼굴에서 느껴졌다.
아빠를 보러 가는 내내 기도했던 나의 바람과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며칠 아빠는 눈을 뜨지 못하고 떠나셨다.
마지막 얼굴을 만나러 오라는 의사의 말이 있던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마지막....
아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이야기했다.
"아빠, 잘 살께요.”
슬픔과 눈물에 나오지 않던 말,겨우겨우 한마디가 떨어졌다.
아빠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아빠는 듣고 계셨던 것 같다.
말로 전하지 못하지만 그 눈물에 많은 대답이 있었다.
아빠의 눈에 흐르던 마지막 눈물, 그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눈물의 기억, 아프고 슬픈 기억, 지금은 그리움이 되었다.
늘 웃으며 나를 아까 주시던 아빠, 마음을 받고 사랑받은 기억들.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진 마음 ,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벌써 16주기 시간은 지났지만 그날의 슬픔이 옅어지고 잊혀지고 희미해졌지만 늘 그리움은 그 자리다.
늦은 저녁 티비 드라마의 한 장면, 소리 내 터진 울음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눈물이 계속 흐르는 밤, 그 날의 나, 그리고 아빠가 다시 겹쳐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
마음에 담아둔 얼굴
시간이 지나 슬픔이 지나간 자리
그리움...
-16주기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