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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희 Jan 31. 2021

별거 안 보냈어

삶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며 


'ooo고객님께 ooo님이 보내신 택배가 금일 10~12시 사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른 아침 택배 문자를 받습니다.

시골에 계신 엄마가 보내신  택배 상자가 곧 도착할 예정이네요.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별거 안 보냈어."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엄마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햇찹쌀이랑 늙은 호박전이랑  떡방에서 한 내가 좋아하는 떡, 하루를 꼬박해서 만들어내는 식혜, 

방앗간에서 꼭 짠 참기름, 고추장 양념해 졸인 멸치반찬 한통, 그리고 호박죽 한 그릇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칠순이 훨씬 넘은 연세의 엄마는  마흔 넘은 딸이 아직도 늘 걱정이십니다.

"일하고 집안 일도 하느라 힘들지? 건강 잘 챙기고 잘 챙겨 먹고..."

엄마의 전화통화는 늘 이런 걱정들로 가득합니다. 

엄마는  나이 스물여섯 나이에 시집와 삼촌, 고모, 우리 삼 남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함께 살았던 대가족 살림을 도맡아 하셨어요.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엄마는 새벽녘에 일어나 밥을 짓고 아침엔 출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또 가족들을 위해 저녁을 지으셨지요.

그러고 보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는 지금의 저보다 한참이나 젊은 나이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고 직장 일과 집안일을 함께 하며 고된 세월을  이기며 사셨어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화내거나 짜증 내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많은 가족들 살림을 어떻게 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던 해, 엄마는 자취하던 나의 원룸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큰 집 식구 살림을 하시던 엄마의 짐은 여행가방 하나가 다였지요.

그 해 우리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고,  엄마는 서울에서 고된 식당일을 시작하셨어요.

아침에 출근해  새벽녘에 일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내가 깰세라 좁은 원룸 침대 옆에 조용히 누우셨습니다.

새벽녘 엄마의 머리맡에서 늘 고기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저와 작은 원룸에서 보내면서도 지치거나 힘든 내색  하신 적이 없습니다.

고깃집 일로 손목이 아파 파스를 붙이고 병원을 다니면서도 늦게 까지 일하는 나를 먼저 걱정하고 엄마는  괜찮다 하셨지요.

그렇게 엄마는 언제고  늘 자식 걱정이 먼저였습니다. 

지금도 엄마는  자식들 집으로 손주를 봐주시러 다니시면서도 또 자식들 먹을거리와 건강만 늘 걱정이십니다.


한해 한해 흰머리에 주름이 더 깊어지는 엄마의 얼굴을 봅니다.  

그래서 이 선물 같은 마음이 한해 한해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별거 안 보냈어.”

정말 우리 엄마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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