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오브피스 Aug 02. 2020

도서관의 무인대출기

전자책에서 다시 종이책으로 넘어갈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책에 쓰는 돈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도서관이었다. 지금의 도서관은 옛날과 비교해 차원이 달랐다. 신간이 서점에 깔리고 약 한 달만 기다리면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었다. 10년 전에는 거의 3개월을 기다려야 했던 것 같은데, 한 달이라니 신세계였다(물론 대출 경쟁이 심하다). 신기한 게 하나 더 있었다. 무인대출기였다. 모든 것이 무인화되는 세상에 도서관 무인대출기라니 별로 놀라울 게 없지만, 내가 눈여겨본 것은 책을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약 두 달 전, 아내와 나는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귀국한 뒤 첫 도서관 방문이었다. 출입 명부에 각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기입하고, 체온 검사를 통과한 뒤, 자료실로 들어갔다. 각자 적당히 책을 탐색한 후, 대출하고 싶은 책을 여러 권 골랐다. 사서분에게 요청해 회원증을 발급받았다. 회원증 발급이 끝나고, 들고 온 책을 대출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대출은 무인대출기로 하라는 것이었다. 자료실 입구 쪽을 보니 무인대출기가 두 대 보였다.


대학생 때도 무인대출기가 있었나?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신기한 마음으로 '대출' 버튼을 눌렀다. 책을 올려놓으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나는 (당연히) 한 권씩 스캔하는 줄 알고 한 권을 들어 스캐너 위에 올려놨다. '대출하시겠습니까?' 책 제목이 인식된 후 나오는 메시지. '예' 버튼을 누르고 회원증을 스캔했다. 그러자 대출이 완료되고 영수증이 출력됐다. '어라?' 내 손에는 아직 대출해야 될 책이 여러 권 남아있었다. 나는 다시 '대출' 버튼을 눌렀다.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진행해야 했다. 책을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고 회원증을 스캔했다. 또 영수증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하나씩 대출을 하다 보니 영수증이 쌓여갔다. '왜 한 권을 스캔하면 바로 대출이 되는 거지? 한 권씩 스캔을 다 마친 후에 대출할 수는 없나?' 뭔가 이상했지만, 어쨌든 그 날은 집으로 돌아왔다.


2주 후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빌린 책을 모두 반납하기 위해 무인대출기 앞에 섰다. 그날은 책 말고도 한 손에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계속 들고 있는 게 불편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싶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전부 스캐너 위에 올려놓고, 가방을 어깨에 멨다. 그리고 반납을 시작하려는데, 무인대출기 화면에는 빌린 책이 전부 스캔되어있었다. '어라?!' 무인대출기는 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기계였다. 책을 굳이 한 권씩 스캔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한꺼번에 쌓아놓으면, 인식이 순식간에 완료됐다. 신기해서 여러 번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스캔은 빠르고 정확했다. 나는 '반납' 버튼을 눌렀다. 그게 다였다. '책이 쌓여있는데 어떻게 다 스캔한 거지?' 집에 오는 내내 궁금해서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니, RFID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는 주파수를 이용해 ID를 인식하는 기술이다. 스티커처럼 얇은 라벨 형태로 생산할 수 있다. 즉, 모든 책에는 RFID 라벨이 붙어있고, 무인대출기의 스캐너가 전자기장을 쏴서 라벨을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정말 유용한 기술이다!!' 1973년에 개발된 기술을 보고 2020년의 미래인이 감탄하고 있었다. 더 조사해보니 도서관뿐만 아니라 하이패스, 전자 여권 등에도 쓰이는 흔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문득, RFID 라벨이 책 어디에 붙어있을까 궁금해졌다. 책 표지에 바코드가 있었지만, 그것은 사서가 바코드를 찍어가며 직접 대출을 해주던 시절의 흔적일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책 표지 안 쪽에 붙어있는 '도서관 이용 안내'라는 스티커를 발견했다. 도서관 소유의 책이니 소중히 다뤄달라, 연체하지 말아 달라 같은 내용이 쓰여있었다. '안내문 스티커가 RFID 라벨 일리는 없는데...' 나는 혹시 몰라 책의 스티커 부분을 거실 조명에 비춰보았다. 스티커 밑에는 네모 모양의 라벨이 숨어있었다. 나는 보물을 찾은 것 마냥 기뻤다.

작가의 이전글 본죽 앱을 써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