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쓰러지던 날
하루 종일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린 날이었다. 비가 그칠 때쯤 다니엘과 오랜만에 만났고 늦은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다. 갑자기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 싸늘하고 차가운 날씨라 졸리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품이 멈추질 않고 눈앞이 하얘진다. 그리고 소리도 점점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귀 안에 압력이 가득한 것 같기도 하고 제일 참기 힘든 것은 속이 울렁거린다. 토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누워야 할 것 같은데 길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니엘 나 너무 힘든데 여기 잠깐 누울게.”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내가 하는 소리에 당황해하는 다니엘을 두고 하루 종일 비가 와 축축한 길 위에 그냥 누워버렸다. 물 비린 냄새가 나는 듯했지만 그런 것을 가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어 가브리엘 괜찮아? 누워 어서. 앰뷸런스를 부를까?”
다니엘의 소리가 아주 멀리 점점 아득하게 들린다.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내가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느껴지지 않지만 입을 움직이고 소리를 내어본다.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어지러우면 무조건 바로 누우래. 조금만 이렇게 있을게.”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걱정하는 다니엘 손을 붙잡고 겨우 몸을 뉘었다.
“저기 벤치까지는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저기 누울게.”
몸을 숙이고 벤치까지 겨우 걸어가 길게 다시 누워버렸다. 벤치도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바닥보다는 조금 덜 딱딱했지만 축축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이런 몸을 이끌고 담담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며 다니엘이 물었다.
“이렇게 쓰러지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아 응. 벌써 세 번째야. 근데 별 문제가 없다던데.” 그 말을 듣는 다니엘의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섞이는 것 같다.
“다니엘, 이자벨에게 전화 좀 걸어줘. 차 가지고 좀 와달라고 해주라” 벤치에 누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아 너의 언니 이자벨? 응 좀 쉬고 있어 봐. 전화해 볼게.”
벤치에 나를 놔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니엘이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이자벨, 지금 가브리엘이 쓰러졌어요. 여기 지금 생또노레 마켓 광장(Place du Marché Saint-Honoré) 근처인데 와줄 수 있어요?”
다니엘이 이자벨에게 전화로 지금 상황을 설명하는 듯하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걸까?’
쓰러지는데 건강상으로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냥 미주신경성 실신이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늘 일이 많은 사람이 잘 자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잘 먹는 것도 이 프랑스 파리 한가운데서 언제 자연의 것들을 찾아 일일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단 말인가. 퇴근하면 쓰러지기 바쁜데 언제 힘을 내어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건강 보조제를 챙겨 먹고 와인과 거리를 좀 두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쓰러지는 횟수가 생기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듯하다.
우리 직군에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올해 이 직군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사람을 대상으로 상담을 반드시 받도록 하고 있다. 상담 대신 코칭을 받는 것도 가능해서 코칭을 받고 있다. 지난번 코칭 때 내 건강상황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다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결국 내가 원한다고 내 입으로 말한 것은 더 이상 쓰러지지 않는 것일 뿐 나에게 어떤 특별한 변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또 쓰러졌다. 나는 이대로 일을 하고 싶은데 내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니 갑갑하다.
아니다. 몸이 피곤하고 힘든 것은 매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천하무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했던 것 같다. 내 몸이 이렇게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대로 일을 하려고 하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가브리엘, 이자벨이 곧 온데 좀 누워있어. 벤치가 너무 축축 할 텐데. 춥지는 않아?"
"응 괜찮아. 춥지는 않아."
"너 물 좀 마시자. 내가 여기 앞에 가서 금방 사 올게.”
다니엘이 물을 사러 가고 혼자 벤치에 누워 생각한다.
그냥 이렇게 여기서 접고 멈추면 약해빠진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나약한 척하지 마. 세상에 너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아. 어디서 일 조금 했다고 배가 불러서 여기서 쓰러지고 있어.’
나는 나에게 왜 이렇게 혹독할까?
코칭받을 때 카티아 코치와 이야기하다가 지금과 같은 나의 자책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자책하는 내 안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큰 두려움에 휩싸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티아가 자책과 이런 두려움에 이름을 한번 지어보라고 했었다.
‘몰리토(Molitor)라고 지었었지. 멀리 떠나라는 한국말의 음과 비슷해서. 몰리토. 멀리 떠…’
“아 진짜, 몰리토 이제 좀 꺼져줄래? 이렇게 몸도 못 가누겠는데 지금 너까지 이렇게 떠들어야겠어?”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