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서 찾아온 공황을 잠재운 사건

바질 이야기 7. 샤갈의 천장화가 소용돌이치던 순간, 가장 심플한 처방

by 마누아 브르통

1. 잠깐의 생각이 불러온 불안


오페라 시작 전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언뜻 보았더니 얀과 브리스 그리고 여성 일행분은 발코니 좌석인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일 수 있겠지만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오페라 가르니에 건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천장의 알록달록한 샤갈 그림을 마음껏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 어쩌나. 여기 왜 이렇게 다 모여있는 거야. 무엇 때문이지?’

‘내편 들어준 얀은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던 브리스와 와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아니지. 안될 것은 없지.’

‘그래, 안될 것은 없다고 치자. 그런데 무슨 이유로, 왜 같이 온 걸까?’

잠깐이었지만 끝도 없는 생각이 나를 이리로 저리로 끌고 다닌다.


“바질, 얼굴이 왜 이래? 하얘 가지고는. 고개는 왜 이래 자라야? 의자에 쑥 들어가서. 아까 그 사람들 아는 사람들이지. 뭐 죄 졌어 왜 이렇게 숨어?”

띠에리의 질문이 내 얼굴을 더 하얘지게 만든다.


‘오페라 안이 이렇게 더웠나. 속이 왜 이렇게 울렁거리지?’


쳐다보지도 않은 오페라 천장의 샤갈 그림이 내 머릿속을 막 떠다니며 빙빙 소용돌이치며 휘졌는다.

‘아 숨 막혀.’

눈앞이 아득해 온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장면을 그려준 제미나이


“야 정신 차려. 뭐야. 물 물 좀 마셔.”

띠에리가 내 뺨을 찰싹 거리며 흔들었다.


‘그렇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왜 이렇게 어지러운 거야.’


띠에리의 말이 들렸다 안들렸다했다. 그러다 여러 번 맞은 뺨 덕분에 정신이 조금 드는 듯했다.

옆에 사람들도 쳐다본다.


정신이 좀 들자 주변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띠에리의 눈도 마주쳤다.


“뭐냐 지금, 바질. 괜찮아? 사람들한테 손은 왜 흔들어?”

“나도 모르겠어. 쳐다보니까.”

분명히 괜찮아지는 것 같았는데, 사람들과 눈을 자꾸 마주치자 다시 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얘 왜 이래. 얼른 4-7-8 호흡법 해봐.”

“그게 뭐야. 나 좀 어지럽긴 해.”

“4초 들이키고 7초 숨 멈추고 8초 동안 내뱉아봐.”


평소 같으면 그런 게 도움이 되냐고 반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 해결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띠에리가 하라는 대로 몇 번 그 호흡법을 해보았다.


“좀 괜찮지?”

“띠에리, 신기하네 왜 좀 괜찮지?”

“몸에 산소가 도니까 괜찮아지는 거야. 숨에만 집중하면서 불안한 생각도 없어지고...”


불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또다시 몸이 어는 것 같았다.

“바질, 얼굴 또 하얘진다. 더 해 몇 번 더해봐 4-7-8.”

“어.. 어.”


시킨 호흡법을 하고 있는데 띠에리가 말을 한다.

“바질, 나갈래? 정말 괜찮겠어?”


"후 우우우우... 후 우우우."

계속 호흡법을 반복하고 겨우 입을 열었다.

“좀 괜찮은 것 같아. 고마워.”

호흡법을 계속해보니 무언가 울렁임이 잦아드는 온도에 도달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럼 안 좋으면 언제든 이야기해. 오페라 중간이라도.”

“중간에 그러면 민폐 아니야?”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꽤나 극단적이네.”


2. 불안이 불러온 두려움에 갇힐 때, 심플하게 거기서 나와보면 어떨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라트라비아타의 막이 올랐다. 주인공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등장하고 극 중의 손님들을 맞이하며 축배의 노래(Libiamo ne’lieti calici)가 울려 퍼졌다.


“덧없는 이 시간들이 쾌락으로 취하게 하세… 마시자 잔 속의 사랑은 더 뜨거운 입맞춤을 얻게 될 테니”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의 찬가에 비올레타가 대답한다.

“세상에서 즐거움이 없는 것은 다 덧없는 짓이죠. 즐깁시다… 사랑은 피었다 지는 꽃 같아서, 다시는 즐길 수 없답니다. 즐깁시다. 뜨겁고 감미로운 유혹의 목소리가 우리를 부르네요.”


‘곡은 좋은데 가사가 이런 거였어?’

매번 듣기만 하다가 오페라 무대 위쪽에 뜨는 가사를 자세히 보니 무언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오페라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멜로디에 사랑을 마주 보는 두 주인공의 다른 시각.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방금 일어난 일을 오페라 주인공 각각의 시각에 대입하고 있었다.

‘뭐야, 얀은 지금 알프레도처럼 적극적으로 본인의 목적을 쫓는 중인 건가? 아님 비올레타처럼 냉소적으로 이 흐름에 맡긴 채 그저 참여하고 있는 거야?’

슬쩍 얀과 브리스가 있는 발코니 쪽을 바라보았다. 다시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아 갑자기 왜 장르가 스릴러야.’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띠에리가 팔꿈치로 나를 툭 친다. 무대를 바라보며 오페라 등장인물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자꾸만 오페라 가사와 생각이 머릿속에 엉킨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머릿속에서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보니 중간 쉬는 시간(entracte)이 되었다.


“바질, 잠깐 나갈래? 옵티마석이 좋긴 하지만, 여기도 의자가 작고 공간이 좁아서 답답해.”

“그래 나갔다 오자.”


순간적으로 발코니 쪽을 바라보았다. 얀과 브리스 그리고 여성 일행은 이미 발코니 석에 없었다.

“언제 나갔지…”

“누가?”

“아, 그게. 회사 동료들인데. 좀 이상해서.”

식음료 주문하는 복도 쪽으로 나가며 띠에리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그 사람들이구나. 뭐가 이상한 건데. 왜 숨어? 물 좀 마실래?”

“샴페인 한잔하자. 팍팍 터지는 탄산 술에 정신 좀 차려보자."

"알코올이 들어가도 괜찮을까."

"나 진짜 괜찮아 이제. 아까 본 사람들 중에 남자들 기억나? 그 둘이 적인줄 알았어. 여기 같이 오는 사이는 아닐 거라 생각했거든.”

“아니 그래서 방금 그렇게까지 불안했던 거야?”

"그건 아닌데... 생각을 좀 하다 보니까."


바질의 얼굴이 또 진화하다. 제미나이의 업적


바로 주문한 샴페인을 내 손에 건네며 띠에리가 말했다.

“어떤 생각? 그런데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숨어. 둘이 적이면 같이 오면 안 돼?”

“어? 보통 그런 사이는 밖에서 같이 안 다니지 않나?”

“전략적 제휴일 수도 있지.”

“전략적 제휴라…"

샴페인에 떠 오르는 탄산 방울을 보고 있자니 다시 마음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둘 중에 누구랑 친한데 너는?”

“어? 누구랑 친하냐니.”


띠에리 질문에 조금 의아하기도 마음이 불편해질 찰나 띠에리가 말했다.

더 친한 사람한테 물어봐. 왜 둘이 왔냐고.

“아니 물어봤다가…”

“물어봤다가 뭐?”


‘그러게 물어보면 되는 건데 왜 숨으려고 했지? 뭐가 불안했던 거지.’

혼자 생각하는데 갑자기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 그 뭐 나를 속이려고 둘이 적인척한 거라면?”

“그거야 물어보면 알지. 당황하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라면 왜 같이 온 건지 이유를 말해주겠지? 혹시 말 못 할 이유면 말 못 한다고 말해줄 수도 있고.”


“그렇네.”

“응”


“띠에리, 뭐 이렇게 심플하지?

네가 복잡한 거 아니고?




쥬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https://youtu.be/afhAqMeeQJk?si=UOS__IG0WHiuKH9G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바질 다이나믹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에 사로잡혔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잠깐의 생각이 불러온 불안에 잠식되어 크게 두려워졌던 것이 너무도 매우 심플하게 해결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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