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머(Drummer), 드리머(Dreamer)
피아노나 기타 등의 악기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상생활 중에 악보를 볼 일은 다들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순간 기억에서 멀어져 버린 악보를 드럼 수업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마치 중학교 이후로 연락하지 않던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느낌이다. 안 그래도 어색한데, 게다가 이 친구는 보는 법이 아예 다르단다.
드럼 악보를 처음 보고 가장 먼저 눈에 띈 점은 자리표가 없다는 것이었다. 높은 음자리표, 그리고 낮은음자리표까지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런데 그런 자리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세로줄 두 개만 짧고 굵게 그려져 있었다. 선생님은 그게 타악기 악보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멜로디 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음의 범위를 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표의 위치가 꽤 제각각이었다. 피아노에서 음의 위치를 '건반'이 결정하는 것처럼 드럼은 이를 '탐과 심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아노에서 솔을 쳐야 한다면 오선지의 밑에서부터 두 번째 줄을 통과하도록 음표를 그린다. 드럼에서는 스네어를 쳐야 한다면 오선지의 밑에서부터 세 번째 칸에 음표를 그리는 식이다. 박자 기보법은 피아노와 동일하다.
드럼 셋의 탐과 심벌은 피아노 건반만큼 많지 않으니까 쉽게 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헷갈렸다. 수업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드럼 악보를 더 공부하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드럼 악보를 이해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발명한 사람이 있었다.
Stephen Bradley라는 한 드럼 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페이스북에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든 드럼 기호 외우는 방법을 직접 그려 올렸다. 드럼 셋의 모습을 그대로 오선지에 옮기고, 각 탐과 심벌의 높이를 음표 위치에 맞추어 기호와 함께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드럼 악보 읽는 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해당 게시물은 9,500번 이상 공유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위의 손그림을 토대로 만들어진 완성본이다. 왼쪽에 타악기 악보 표시도 들어가 있다. (드럼스틱 모양으로 그린 것이 인상적이다.) 이 그림 덕분에 나 역시 드럼 악보를 쉽게 익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