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만소 Jan 25. 2023

[9] 남자는 처음 업힌 사람의 등을 보고 자란다.

  아버지는 늘 베란다의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담배를 태우셨다. 목이 다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고는 아파트 베란다 밖 하늘을 보며 끝없이 한숨을 내뱉으셨다. 나는 사촌형에게 물려받은 어느 만화 영화의 인형을 가지고 놀며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향을 맡았던 것 같다. 길고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러닝셔츠 위로 빼곡한 문신이 다른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요소였다.

 이따금 그의 향을 깊게 들이마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기침을 하곤 했다. 아버지는 어깨너머로 나를 돌아보고는 가까이 오지 말고 방에 가라 하셨다. 나는 조금 더 그와 곁에 있고 있었을 뿐인데 그의 냉정한 목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곱게 방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상냥하신 분이었다. 그는 시집을 좋아했다. 어머니에게 처음 선물했던 것도 시집이었다고 한다. 책 속지에 한자의 부수가 틀린, 삐뚤거리는 편지가 마치 아버지를 묘사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한자. 아버지는 세상을 알고 싶으면 한자를 외우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점점 한자 표기는 사라지고 외국어로 바뀌는데도 아버지는 끝까지 한자를 고집하셨다. 그렇게 나는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상용한자는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고마웠던 일이다. 적분에 내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재즈를 사랑하셨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는 아이 같은 미소를 하곤, “미츠코는 재즈 같은 여자였어! “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날에는 나를 자기 다리에 앉히고는 피아노를 치곤 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 닿아 간질거렸고 연신 내려갔다 올라가는 다리에 멀미를 할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그날, 그의 향은 오랜지였다. 

 성인이 된 후였는지 어머니가 어느 날 큰 가방을 들고 일본으로 떠난 해였는지 모르지만 그가 피아노를 치고 시집을 읽는 모습,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감옥에 갔고 나는 거의 15년 간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4,500원입니다.”

 나는 오천 원짜리 지폐를 편의점 직원에게 건넸다. 거스름 돈을 받지 않기 위해 대충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는 젤리 같은 것을 골랐다. 어이없게도 10퍼센트 할인된 가격의 상품이었고 나는 50원을 주머니에 넣으며 가게를 나왔다. 차 안에서는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곧 공항 가면 면세점 들어갈 텐데 굳이 여기서 사야 해?”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동안 못 참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공항으로 가는 동안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를 잔뜩 해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하프인 것을 알고는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는 말을 들었다.

“나고 자란 게 한국이라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그녀의 목에 살짝 입을 맞추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내 팔 한쪽을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했다. 중요한 건 그 점이 아니었다. 일본에는 결혼 허락만 받고 식은 한국에서 올리기로 했기 때문에 아마 그 부분이 제일 탐탁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도 나고야에 계시니까 일본에서도 식을 올리는 게 좋을 텐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까지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때마침 밀려오는 업무 전화가 내 핑계에 힘을 실어 주었다. 공항은 한적했고 우리는 여유롭게 비즈니스 석에 올랐다. 그녀의 친가까지는 공항에서 단 2시간이 걸렸다. 나름 도심에 살고 있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러니까 삼 녀까지 유학을 보냈지.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흉을 보던 것처럼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반겼고 내 어눌한 일본어를 칭찬했다. 내가 어머니한테서 읽던 일본의 이미지와는 무척 다른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미디어 매체에서 나올 법한 가족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LP판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고 했다. 그의 LP판에는 시대를 휩쓸었던 록 스타들의 얼굴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재즈는 듣지 않으시냐 물었다. 

“재즈 같은 건, 나 같이 멍청한 사람은 못 들어. 들어도 뭐가 좋은 지 모르겠다니까. 자네는 재즈를 좋아한다지? 나는 와인보다는 맥주야.”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 정도 집에서 사는 것 보면 꽤나 배운 사람 같은데. 나는 집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가 재즈를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예비 장인은 나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혼녀의 가족은 단란했다. 나도 형제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 데라는 생각을 한 밤이었다. 몇 년째 이용하지 않은 그녀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녀와 나는 나란히 누워 오늘의 감상을 얘기했다.

“결혼하게 되면, 우리는 가족이 되는 거잖아. 오빠네 가족은 다 따로 떨어져 산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같이라고.”

 나는 웃으며 네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물었다.

“결혼식 때, 아버지도 부를 거야?”

 나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생각을 안 해보았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공백은 아버지와 내 사이에 꽤 큰 벽이었다.

“글쎄, 아마 결혼하는 건 아실 걸. 어머니와는 가끔 만난다고 하더라.”

 나는 근본적인 질문은 피하면서 대답했다. 그녀는 이런 회피 방법을 아주 싫어했다. 그녀가 내 가슴을 꼬집었다. 하는 수 없이 내 생각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쪽에서 연락하고 싶으면, 연락을 하고. 오려면 오겠지. 내가 먼저 와 달라고는 부탁 안 할 거야.”

 그녀는 만족했는지 다시 내 겨드랑이 사이로 머리를 욱여넣었다. 

“일본의 겨울은 춥지?”

 나는 오랫동안 방이 비워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겨울은 추워.”

 그녀가 더 깊숙이 내 겨드랑이에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몸을 그녀에게 돌려 입맞춤을 했다.

“기분이 이상해. 내가 나고 자란 방에서, 남편이랑 누워있으니까.”

 그녀가 날 보며 생긋 웃었다. 업무 전화가 울렸지만 나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한참 후에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에게 연락드리자. 우리 결혼식 장면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나는 역시 오빠 아버지가 왔으면 좋겠어.”

 그녀가 미소를 머금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게 빙긋이 미소를 짓고는 시간의 경과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느린 동작으로 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스키야키의 향이 아직 달았다. 


 아버지는 의외로 내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계셨다. 어머니에게 그의 전화번호를 물었고 전화로 집 주소를 알아내었다. 15년 만에 만난 그는 내 기억 속의 모습보다 왜소했다.

“별일 없었냐.”

 그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적당히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가 변호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결혼한다는 말도 했다.

“내가 가도 괜찮겠냐.”

 아버지는 다시 한번 질문이 아닌 듯한 말투로 물었다. 아마 확인이겠지. 나는 그러라고 연락을 드린 것이라 말했다.

“들어보니, 결혼하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던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 같은 사람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정말 물음 같았다.

“재즈 같은 사람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는 웃었다. 아버지의 방은 여전히 아버지의 방 같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한편에 비싸 보이는 오디오, 즐겨 치시던 피아노와 수많은 재즈의 악보들이 있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슬슬 해가 길어지는 시기였다. 비행기가 남기고 간 구름은 서로 맞닿을 수 없을 것처럼 평행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베란다의 창문을 여셨다.

“담배 태우냐?”

 나는 아버지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는 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으나 그는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 문신 속의 동물들은 더 이상 짖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8]별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