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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Jan 11. 2023

[8]별난 사람들

13월


 마스터가 세상을 떠났을 때, 후지타 마리나는 펑펑 울었다. 그녀가 내게 처음 보인 눈물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차로 15분 걸리는 오래된 카페에 자주 들락거렸다. 1층은 통일되지 않은 잡화를 팔았고 2층은 카운터 다섯 석과 테이블 세 개 정도 비치된 작은 카페였다.

“식사? 커피?”

 처음 가게에 방문했을 때 카페 주인이 컵에 물을 따라 테이블에 올려놓고 물었다. 물이 성나게 일렁거렸다. 커피와 홍차를 주문했기 때문일까. 테이블 구석에 놓인 검정의 사각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생김새로 보아 하이자라* 같았다.

*재떨이의 일본어

 담배를 피워도 되냐 물어보자, 그는 눈으로 하이자라를 가리키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거리가 되자, 마리나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소곤거렸다.

“사장님, 뭔가 마스터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

 내가 조용히 킥킥거리며 웃었다. 확실히. 백발의 덩치가 큰 할아버지. 동그란 안경과 가죽조끼를 입은 것이 꼭 옛 일본 소설에 나오는 킷사텐**이나 레스토랑의 주인 (극 중 주인공은 그런 사람을 꼭 마스터라고 불렀다) 같았다.

**한국의 다방

 그녀는 금연한다는 이유로 내가 붙인 담배를 이따금 가져가 자신의 립스틱을 잔뜩 묻힌 다음 내게 돌려주었다. 그렇게 담배 하나를 나눠 핀 시간이 지나고 ‘마스터’가 찻잔 두 개를 들고 왔다. 내가 감사하다며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마스터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야.”

“강아지가 있어요?”

 그녀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는 일 층에서 자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1층으로 뛰어내려갔고 나는 담배 하나를 다시 입에 붙이고 그녀가 충분히 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우리 이번 연휴에 어디 갈지 정하려고 했잖아.”

한참을 기다리자 그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카페인만큼 나무판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가게 안에 크게 울렸다. 그녀는 나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내 자리를 빼앗고 옆에 앉아 방금 찍어 온 사진을 내게 보여줬다. 대충 세어봐도 스무 장은 되어 보였다.

“시바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요크셔테리어네.”

“그거 일본인에 대한 편견.”

 내가 웃었다. 그녀는 한참을 사진 속 강아지를 귀여워하다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이미 차갑게 식은 홍차를 한 번에 들이켜고 벌써 지루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유난히 큰 눈이 내게 무언가를 원한다는 표정이었다.

“알았어. 집에 가서 찾아보자.”

 나도 핸드폰을 덮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대화해?”

 내가 물었다. 그녀는 맞았다는 듯 눈썹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제는?”

 이번에는 입술을 한쪽으로 모으고 눈을 치켜떴다. 무언가 그녀가 기뻐할 만한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곧 생일이지. 생일 선물은 뭐 가지고 싶어? 역시 온천 여행이지? 그럼 어디로 갈지 찾아볼까?”

 그녀가 살짝 성질이 난 듯 내 팔을 쳤다. 그 모습에 웃어 버렸다.

“그렇게 계획에 열심인 건 한국인 만이야? 아니면 오빠만?”

그녀가 토라져서 물었다. 나는 그녀의 빠져나온 앞머리를 제대로 정리해주고 쓰다듬었다. 금방표정이 풀려 싱그럽게 웃었다. 그녀를 재미있게 해주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지만 토라진 것을 풀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카페였다. 손님은 적고 사장은 우리를 방해하지 않고 적당히 커피 냄새와 홍차 냄새가 어우러져 담배 냄새를 가려주는, 일 층에는 마스터가 해진 방석에 앉아 우리를 배웅하고 불투명한 유리 밖으로 나무와 바다가 번지듯 보이는 카페였다.

너무 카페 얘기만 한 것 같아 말을 돌리자면 후지타 마리나는 내 여자친구였다. 나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골에 오게 된 직장인이었고 그녀는 이 시골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학생이었다. 애초에 이곳은 한국인은커녕 외국인도 살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어느 정도 녹아들고 어느 정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중이었다. 요즘은 일본 여행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곧잘 일본으로 온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볼 것 없고 할 것 없는 이 창살 없는 감옥, 마리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감옥과 같았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아케이드***는 이미 반 이상의 가게가 망해 온라인 쇼핑이 아니고야 쉬이 물건을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이틀에 한 번꼴로 눈이 내려 도로가 마비되는 게 일상인 곳이었다. 같은 일본인데도 후쿠오카와 여기는 다르구나. 그러고 보니 부산과 화천도 다르지.

*** 건물 사이에 있는 길에 지붕을 씌우거나 건물들 사이에 있는 특정한 모양의 공간을 지붕으로 덮는 형태 등

내가 본 일본인들은 다들 자기 지역 밖으로 나가는 걸 극히 꺼리곤 하던데 마리나는 달랐다. 항상 나가고 싶어 했고 가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열 두 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반짝이는 눈으로 따라오곤 했다. 덕분에, 나는 열 두 시간이라는 시간을 그녀의 ‘심심함’을 달래는 데 써야 했다.

“나는 윤달에 태어났으니까. 다른 거지.”

 언젠가 그녀가 우리 집에 머물던 날, 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지 묻자 그녀가 한 말이었다.

“윤달에 태어난 사람은 생일이 13월이래. 13월이라니! 너무 별난 단어 아니야? 평생을 별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거잖아. 별나게 태어났는데 이런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면 손해잖아.”

 그녀는 두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고 자부심을 잔뜩 실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와 사귀는 이유도 내가 한국인. 특별하기 때문이야?”

 그녀가 빠져나올 수 없는 귀여운 웃음을 지었다.

“미쳤어?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을 그런 이유로 고르게.”

 나는 어딘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덤덤하게 물어본 것 치고는 손 마디마디에서 땀이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는 한껏 자신의 차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물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힘껏 구기고는 빠져나왔을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잘 생겼잖아.”


 며칠 전, 아침부터 카페 사장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요 며칠 마스터가 아프더니 이내 죽었다는 전화였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마리나에게 전해주었다. 마리나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 큰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지니 비현실적인 크기의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계속 카디건 소매로 그녀의 볼을 닦아주며 달래 주었다.

 우리는, 아니 그녀는 이내 며칠을 더 우울해하다 내가 카페 얘기를 꺼내는 것을 그만두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아마,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로 인해 그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던가. 그러나 내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기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한 밤에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오빠, 우리 오사카 가자. 유니바****가고 싶어 했잖아.”

기껏해야 온천을 생각하던 나에게 정말 그녀다운 제안이 들어왔다.

****: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일본식 발음

내가 사는 아키타에서 오사카까지는 차로 14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항상 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그녀는 차 뒷자리가 가득 찰 만큼의 짐을 들고 왔다.

“가서 알려줄게.”

 내가 무엇을 그리 많이 들고 가냐고 묻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내 경차는 참 좋다. 운전석과 보조석이 한 의자로 되어 있으므로 언제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면 금방이라도 그녀의 얼굴이 내게 달라붙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라디오 통신을 이용해 노래를 틀었고 그녀는 내 핸드폰 빼앗아 가서 선곡했다.

“재즈. 요즘에는 재즈가 좋더라.”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재즈 음악이 차를 가득 메웠다.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였다. 내가 후렴 부를 계속 흥얼거리자 그녀가 말을 걸었다.

“얼마 전에 오빠가 좋은 이유 물었잖아.”

 시속 120킬로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시선을 앞에 고정하고 귀를 기울였다.

“오빠는 항상 필사적으로 사니까 좋아해. 내가 기분이 나쁘면 좋아지도록, 내가 심심해하면 한 번을 귀찮아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대화 주제를 꺼내고… 마을에서도 항상 사람들 곁에 녹아들기 위해 열심히잖아. 오빠는. 그게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좋아해.”

 내가 흐뭇하게 웃었다. 곁눈질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분홍색 블러셔 때문인지 얼굴이 반짝거렸다. 벌써 어둑해지고 가로등 불빛밖에 없는데도 내게 그녀는 환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마스터. 좋은 곳 갔겠지?”

 마스터가 떠난 후 처음으로 그녀 입에서 마스터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 괜찮아졌다는 뜻이겠지.

“사실, 일본 하면 시바견인데. 그렇지? 걔도 참 별났어. 일본에서 영국의 개라니.”

 나는 입을 다물고 들었다.

“이제 필사적으로 안 살아도 돼. 우리는 별난 대로, 소외된 대로 그렇게 13월의 우리대로 그렇게 살자.”

 그녀가 끊었다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에게도 한 대 나누어 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가 붙여주는 불을 힘껏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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