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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Mar 20. 2023

[11]청,계

 동대문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항상 구석에 앉아 벽을 보며 밥을 먹는다. 단골 가게는 늘 북적거린다. 대부분이 늦은 점심을 찾는 상가의 사람들이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그들이 머리 위에 붉은 털 같은 게 달린 돼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버린 후로 나는 가게에 누가 들어와도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릇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계산을 한 후에나 용기를 내어 가게 안을 돌아보곤 오늘도 그들이 사람이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가게를 나선다.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라는 조금은 낡았지만, 비싼 호텔이 나온다. 그 건너편은 평화시장으로 ‘패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옷감을 팔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행이 다 지난 색의 옷들만 진열되어 있었다. 한때는 여기도 굉장히 잘 나가던 곳이었다.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쯤 오면 젊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옷을 많이 가져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말들을 도매상과 주고받는데 나는 다시 태어나도 저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평화시장 아래에는 헌책방 가게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나는 사흘에 한 번꼴로 이곳을 찾는다. 별다른 용무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바쁜 서울에서 변하지 않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헌책방을 찾는 날이었다.

 아직 일 월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았다. 동대문에는 열기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기 위한 열기. 나는 그 열기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선인장 같은 존재였다. 직업도 없고 느리지만 확실히 하얗게 말라붙어 가는 선인장이었다.

“어서 와라.” 사장이 큰 돋보기안경 너머로 나를 보더니 다시 수첩에 집중하며 말했다. 나는 그가 좋았다. 늘 와서 아무것도 안 사는 손님을 오히려 반겨주었고 가끔은 먹을 것도 줬다. 그때마다 그는, 적적한데 누가 앉아서 책 읽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며 아르바이트비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는 이미 삼 년 전부터 하지 않아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곳은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손님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아르바이트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가끔 손녀가 찾아오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소설에 빠져 있어요.”

“그러냐. 읽기 전에 일로 와서 이거 계산이나 좀 도와줘.”

 내가 야스나리의 유명하지 않은 쪽의 소설을 꺼내는데 그가 말했다. 나는 책을 내 전용 의자 위에 올려 두고 카운터처럼 쓰고 있는 유리로 된 책장 너머로 그가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쌀집 계산기를 옆에 두고 연신 무언가를 두들기고 있었다.

“아니, 사장님. 여기가 이렇게 장사가 잘돼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가 여기 찾은 후로 다른 손님은 본 적이 있냐?”

“그건 그렇지만…”

“여기는 그냥 내 치료 시설 같은 거야.”

 무슨 병인지 물어보려다, 실례가 되는 말일까 하고 망설였다. 그나저나, 구멍가게의 수입치고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무슨 돈인지는 네가 알 바 아니고. 그냥 이거 계산 좀 해서 여기 다 옮겨줘. 하루 종일 핸드폰 사진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니 도통 눈이 아파서 힘들어 죽겠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펜을 수첩 위에 놓았다. 나는 핸드폰에 적힌 숫자를 받아 적고 제일 밑에 총액을 적었다. 

“대충 하지 말어.”

“대충 한 거 아니에요. 저 암산왕 출신이에요.”

“인마, 암산왕 출신이 왜 평일 대낮에 여기서 책이나 읽고 있냐. 여의도에나 갈 것이지. 너는 촐싹거리니까, 제대로 계산기 두드려 봐.”

 그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계산기를 두드렸다. 계산이 맞지 않아 당황했지만,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처음 적은 숫자가 나왔다.

“대단한 건지, 나사가 빠진 건지…” 그가 수첩을 자기 쪽으로 끌며 말했다.

“그나저나, 치료 목적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말 그대로 그거야. 나이를 먹으니까 똥이 안 나와. 근데 책방에 이렇게 앉아있으면 하루 종일이고 배가 이렇게 살살 아프니까. 얼마나 좋아, 변비 치료.”

“심각한 지병이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요. 이십 년은 더 정정하실 것 같아요, 사장님은.”

 그는 검지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올려 두었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기분이 좋은 걸 숨기지 못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헌책방의 좋은 점은 읽던 부분에 책갈피를 꽂아 놓고 집에 가도, 다음에 오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읽기 시작한 지 십 분도 채 안 돼서,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어버렸다.

“사장님. 그러고 보니 손녀분 최근에 안 오시네요.”

“오늘 와. 너 있다니까 온다네.”

 나는 그의 말에 온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가게 문 밖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책에 눈을 돌렸다. 나는 내 표정이 지금 일그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유리로 된 카운터를 쳐다 보았다. 시선을 조금 위로 올리니 사장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내실 있는 대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서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가 보인 무언의 이해였다. 

“사장님, 저는 사람들이 무서워요.” 언제 한번 그에게 나의 내면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처음 그는 노인네를 놀리는 거 아니라며 무시했다,

“남들은 다들 열심히 사는데 언제부터 제 시간은 멈춰 버린 것 같아요. 아마,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을 때였을 수도 있고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였을 수도 있어요. 아마, 그때 이후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방에 있다가 나왔는데 사람들은 너무 바삐 움직이더라고요. 특히 여기 평화 시장이요.”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요즘은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돼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돼지는 나태를 상징한다고 이 책에도 나와있는데…”

 읽고 있던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작 나태로운 건 난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돼지 같다니. 이상하죠.”

“돼지처럼 먹고 소처럼 일 해야지.”

 그가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식욕. 노동은 식욕을 낳는다. 

“그때 여기를 발견한 거죠. 헌책방. 얼마나 좋아요. 시간을 다 해서 헐어버렸는데 그 가치는 변하지 않았어요. 내용물은 같잖아요.”

“여기는, 한때 평화시장만큼이나 북적거렸어.” 몇 마디의 메트로놈이 원점을 지나간 후에 그가 말했다.

“여기는 휘황찬란한 전성기가 끝난 자의 ‘말로’야. 사람도, 책도, 거리도, 가게도, 나도. 없어지거나 남아서 썩어가거나.”

“그래도 그게 좋은데요.”

“언제든지 가게로 와. 책을 계속 읽게 해줄게. 그냥 내 잔심부름이나 몇 개 해주고.”

 그는 자기 돋보기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며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은혜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가 어디선가 구해 온 싸구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는 참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할수록 그의 행동은 다정했다. 나는 그래서 그가 좋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보다도 그가 진짜 나의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그의 손녀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바쁘게 살면서도 자기 할아버지 안부는 끔찍이도 생각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올 때마다 나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마치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에 낀 곰팡이를 없애려는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키가 크고 안경을 썼으며 항상 화장은 옅게 했다. 마치 자신은 거릴길 것이 없다는 뜻 같았다. 그녀는 상냥했으나 절대 나를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로 내게 묻는 질문이 젊은 사람이 평일에 왜 여기서 책을 읽고 있냐는 식의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그럴 수 있다면서 나를 넘겨짚었다.

 사장은 사랑하는 손녀의 언행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무래도 우선순위로서는 자신의 객식구보다는 피가 이어진 손녀였겠지. 알 수 없는 질투심에 몸이 뒤틀리는 듯했으나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왔어요.” 그녀의 생각을 하던 중에 그녀가 왔다. 사장은 카운터에서 번쩍 일어나 그녀의 정장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고 그녀는 그것이 좋다는 듯 웃음과 동시에 나를 내려보았다.

“오랜만이네요.” 그녀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네. 오랜만이네요. 곧 일어나려고 했어요.”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 없어요. 편하게 있다가 가세요. 할 얘기도 있고.”

 나는 다시 한번 유리로 된 카운터를 보았다. 최대한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기 위함이었다. 할 얘기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도려져 차가운 수술대 판에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내 심장에서 나오는 소리가 귀에도 들릴 정도로 울리고 있었고 이내 나는 아직 무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버지, 저 커피 좀 사 올게요.”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내 의자 옆에 자기 가방을 내려놓고 책방을 나갔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사장에게 기일을 늦춰 달라는 채무자처럼 매달렸다. 그러나 그는 별일 아닐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쓸쓸해지겠네.” 그러나 그의 말은 너무나 선명했다.

 초등학생 때, 앞자리에 앉은 여자애의 머리카락에 풍선 껌을 붙인 적이 있었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입에서 풍선 껌이 날아가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정확히 안착했었다. 뒤에서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풍선 껌은 점점 그녀의 머리카락들을 뭉치며 단단해졌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나는 것이 무서워 벌벌 떤 기억이 있다. 불현듯,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십 분이 지났을까,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커피 세 개를 들고 왔다. 그녀는 따뜻한 차로 보이는 것을 사장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마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생각되는 컵을 내게 건넸다.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

 그녀가 자신도 같은 거라면서 남은 하나의 컵을 빙빙 돌렸다. 밖에 나가자는 말에 나는 말없이 그녀 뒤를 뒤따라 나왔다.

“벌써 비 냄새가 나네요.”

 그녀가 청계천을 걸으며 말했다. 나도 그녀처럼 냄새를 맡아 보았으나 청계천의 비린내 말고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읊었다.

“비 오는 소리를 꽤 좋아해요. 아이스 커피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얼음이 녹으면 창문에 비가 묻은 것 같잖아요.”

“저는 비 오는 날 방에 앉아서 핫초코 마시면서 책 읽는 거 좋아했어요.” 

“얼음이 들어간 거 별로예요?” 그녀가 놀라며 말했다.

“싫어하지는 않아요. 일단은, 성인이 된 후로는 커피만 마시니까요.”

“책 읽는 거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그녀 나름의 비꼬는 걸까 생각했다. 나는 간신히 대답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작은 목소리가 나왔기에 그녀가 들었을지 자신이 없었다.

“저도 좋아해요. 할아버지 책방만큼은 아니지만, 책이 진짜 많아요. 오늘 읽고 계시는 거도 있어요. 할아버지는…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래요. 지금은 잠깐 주춤한 것처럼 보여도 아직 이 헌책거리처럼 쓰러질 사람은 아니랬어요. 웃기죠. 그걸 왜 저한테 말하는지. 그리고 이걸 왜 당신한테 말하고 있는지.”

“아니에요.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죠.”

“당신이 제 얘기,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무슨 말인지까지는 알려주지 않아서 늘 궁금했는데. 저는 당신 처음부터 괜찮게 생각했어요. 평일에 한가롭게 헌책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인데, 어떻게 호기심이 안 생기겠어요.”

 어쩌면 그녀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내가 그녀를 알려고 하지도 않은 것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생각하니까, 남들 눈에도 한심할 것이라고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날이 꽤 추워졌는데 데이트하러 나온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 만나 볼래요?”

 나는 놀라서 자리에 멈춰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멈췄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중학생 때나 유행하던 옅은 핑크색 컬러의 립 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그동안 우리 꽤 많이 시그널 보낸 것 같은데.”

사장이 말한 쓸쓸해지겠다는 의미는 손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나요.” 나는 주변이 서서히 가로등 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번호를 달라는 신호였다. 나는 군말 없이 내 번호를 그녀의 핸드폰에 저장했다.

“좋은 이름이네요.”

“고마워요.”

“전화 주세요.”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눌러 내 핸드폰에도 그녀의 흔적을 남기며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책방에 들르지도 않은 채로 집에 왔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는 것이 등 뒤로부터 전해졌다. 천천히 심호흡하고 내 상황을 살펴보았다. 서른이 되어가고, 아직 직업이 없다. 모아둔 돈은 물론 가진 것이라고는 대학 졸업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나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얼마나 꼬인 사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꿈에서 나는 사람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모든 사람은 일제히 저마다 가게를 들어갔다가 나오길 반복했고 상인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마 헌책방거리의 옛 모습이었다. 젊은 사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게 이곳의 미래를 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어땠냐고 물었다. 늙고, 낡고,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의 냄새가 나고, 조용했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참 덧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는, 그런 잔여물이 남으려면 일단 성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아침 여덟 시였다. 마치 삼 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알베르트 카뮈 소설의 한 등장인물처럼 나는 아침을 입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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