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 오는 날의 호박전

그 시절, 함께여서 행복했다

by 안온



'쏴아...'


'뚝 뚝 뚝 뚝'


처마 밑으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마루에 걸터앉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곤 했다.


"재표야. 아빠랑 바둑 할까?"


"아빠, 알까기 하자!"




빗소리를 마주하며 아빠와 동생은 따뜻한 안방에서 알까기를 하고. 안방 옆으로 조그마한 문이 나있는 부엌을 향해 발걸음 하는 우리 엄마


"엄마, 뭐 만들게?"


"비도 오고 하니까 호박전 해 먹자."





싹싹싹 싹. 경상도식 호박전은 호박을 채를 썰어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 전을 부친다. 촤르르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프라이팬 위로 쫘악 하고 퍼지는 소리.


옆 방에서는 아빠와 동생이 알까기로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나는 심판이랍시고 왔다 갔다 하며 손에 든 호박전을 아빠 입에 넣어준다.


엄마는 연달아 호박전을 세 개 정도 부치고, 조그마한 그릇에 간장을 담는다. 온 가족이 마루로 나와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전을 먹고 나면, 어느새 비가 그쳐 처마 밑에 떨어진 비를 받는 물통을 갈아줘야 했다.




"승희야, 호박 따러 가자."


아침의 시작은 늘 7시 전후. 우리 집 지붕 위에는 작은 호박들이 주렁주렁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약간은 촉촉하고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빠와 호박을 따러가면, 아빠는 그 호박으로 항상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아빠의 된장국은 항상 고추와 호박이 들어가서 칼칼하면서도 담백했다.




어른이 된 지금, 네 가족이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다. 엄마가 된 지금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호박 하나로 비 오는 날 전도 부쳐먹고, 바로 따온 호박으로 된장국도 끓여먹고. 어쩌면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던 우리 네 식구. 그저 '호박'하나에 웃을 수 있었던 그 시절.




내일은 호박 된장국을 끓여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