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마주하며 아빠와 동생은 따뜻한 안방에서 알까기를 하고. 안방 옆으로 조그마한 문이 나있는 부엌을 향해 발걸음 하는 우리 엄마
"엄마, 뭐 만들게?"
"비도 오고 하니까 호박전 해 먹자."
싹싹싹 싹. 경상도식 호박전은 호박을 채를 썰어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 전을 부친다. 촤르르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프라이팬 위로 쫘악 하고 퍼지는 소리.
옆 방에서는 아빠와 동생이 알까기로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나는 심판이랍시고 왔다 갔다 하며 손에 든 호박전을 아빠 입에 넣어준다.
엄마는 연달아 호박전을 세 개 정도 부치고, 조그마한 그릇에 간장을 담는다. 온 가족이 마루로 나와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전을 먹고 나면, 어느새 비가 그쳐 처마 밑에 떨어진 비를 받는 물통을 갈아줘야 했다.
"승희야, 호박 따러 가자."
아침의 시작은 늘 7시 전후. 우리 집 지붕 위에는 작은 호박들이 주렁주렁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약간은 촉촉하고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빠와 호박을 따러가면, 아빠는 그 호박으로 항상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아빠의 된장국은 항상 고추와 호박이 들어가서 칼칼하면서도 담백했다.
어른이 된 지금, 네 가족이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다. 엄마가 된 지금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호박 하나로 비 오는 날 전도 부쳐먹고, 바로 따온 호박으로 된장국도 끓여먹고. 어쩌면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던 우리 네 식구. 그저 '호박'하나에 웃을 수 있었던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