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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철에 태어난 아이

갑작스러운 동생의 교통사고

by 안온



화개 사람들에게 차 철이면 하지 말아야 할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첫째, 차 철에는 죽으면 안 된다.


둘째, 아기도 낳아서는 안된다.


셋째, 결혼도 하면 안 된다.


차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1996년 4월 2일에 태어났다.


그때 한창 부모님이 식당을 하면서, 녹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동생을 낳고 몸조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던 게, 식당일 하느라 바빴고 녹차 일도 해야 했다.


식당의 작은 방 한 칸과 화장실로 이어지는 방에서 우리 네 식구가 살았다. 엄마는 백숙을 만들기 위해 닭들을 너무 많이 살생했다며, 지금 몸이 약한 게 다 그때의 업보 같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동생이 태어난 4월 초.


그즈음 화개에는 십리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진다. 그날도 그랬다. 벚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져 가고, 녹차 잎이 슬금슬금 올라올 때쯤.



"여보세요."


"#$#$$#~"


"뭐라고요?.....!!!!(떨어지는 전화기)"


"여보, 어떡해... 어떡해 우리 경보 어떡해"


(내 동생의 이름은 홍재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개명을 했는데, 그 전 이름은 홍경보였다.)




그날은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동네에 친한 언니인 은지 언니네서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오고, 동생은 모암 마을 길 옆에 위치한 소나무 가든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녹차 잎을 가려내고 있던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어릴 때였지만,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동생이 이층 집인 소나무 가든에서 놀다가 빠르게 계단을 내려오며 지나가던 관광버스에 치였다는 것이다.


"어떡해.(흑흑 울면서) 엄마 경보 어떡해. 죽는 거 아니겠지?"


입고 있던 앞치마와 두건, 토시를 벗어던지고 엄마와 아빠는 곧장 소나무 가든으로 달려갔다.


"승희야 일단 집에 있어. 은지 언니 큰엄마 부를 테니까 있다가 같이 하동병원으로 와."





가슴이 답답했다. 누군가가 심장을 걸레 빨듯이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은지 언니네 트럭을 타고 하동 병원으로 가는 내내, 나는 손에 땀을 쥐며 제발. 제발 동생 괜찮게 해 주세요 제발이요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스님. 님이란 님은 속으로 다 불렀던 것 같다.


똑딱똑딱. 밤중에 도착한 하동병원은 꽤나 한산해서 시계 소리만 내 심장을 마구 후벼 파고 있었다. 병실 문을 열려고 했을 때, 차마 못 볼 것 같아서 혹시나 동생이 심하게 다쳤을까 봐 걱정이 되어 눈을 감고 조심히 들어갔다.




"경보야....! 괜찮나? 다친 데는 없대? 어떻게 된 건데 도대체.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나."


이렇게 속사포처럼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걱정하는 나를 보며, 동생이 머리 CT를 찍고 다행히 괜찮다고 하루만 입원하면 된다고. 그렇게 안심시켜줬다.




동생의 나이는 아마 9살쯤 되었을 거다.


관광버스가 빠르게 오고 있었고 크기도 커서 어쩌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녹차 철에 태어나 녹차 철에 죽을뻔했던 남동생은, 그 후로도 개에 물려 꼬매고, 팔에 유리가 박히고 여러 번 위험한 일들을 겪었지만 지금은 아주 건강하고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



1년 중에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마는. 화개 사람들은 특히 1년 중, 녹차 철에는 별 탈 없이 넘어가기를 바란다.


어린 날, 동생이 큰 사고를 당했던 그때의 4월은 우리 가족에게는 잊지 못할 녹차 철이 되었지만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어 감사했다.




어쩌면 차를 만드신 조물주가 선물해준 기회일지도 모를 그날. 차철에 태어난 아이가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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