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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공존하는 법

2024.07

by 만수당

코로나가 끝나고 가장 호황을 맞은 곳이라면 전시 컨벤션 산업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전시회가 치루어지는 코엑스와 킨텍스에는 사람이 없는 날이 없다.

그런데 전시회에 가게 되면 꼭 보이는 분들이 있다.

해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업체에서 주는 판촉물을 한보따리씩 들고다니는 분들이다. 참가업체 입장에선 제품에 관심도 없고 구매 능력도 없는데 돈들어가는 판촉물만 들고가니 좋은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간혹 현장 표를 삼성역 앞에서 암표로 팔기도 하고 체면이라곤 없이 무리 지어, 또 외따로 움직이며 판촉물을 모두 수거하다시피 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이런 분들을 '독수리'라고 부른다. 내가 처음 들은게 십년도 더 전이니 한참 오래된 말이라 생각이 든다. 초기에는 정말 독수리 떼처럼 몰려다니며 부스를 털어먹었다고 듣기도 했다.

업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니 나도 모르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다.

박카스를 드리며 어느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경계심을 풀지 않던 눈빛은 차츰 누그러졌다.

그저 책살 돈이 없고 구경할 것이 없으니 여기서 돌아다니며 읽을 거리도 좀 가져가고 재밌게 논다고 하신다. 판촉물로 받아오는 것들은 동네 노인들끼리 함께 나누거나 고물로 파는 경우들도 있다고 하신다. 요새 사람들은 당근인지 당나귄지 한다면서? 근데 우리는 할 줄을 몰라~ 하시며 손사레를 치신다.

IT전시회가 많다보니, 또 대부분 영어로 써진 리플렛이 많다보니 학교 나오신 다른 할아버지가 알려주셔서 알파벳도 떼셨다고 한다. 다만 단어는 아직 몰라 읽을 줄만 안다고 하시며 부끄러워 하셨다.

한 이십여 분 정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저분들이 스스로 판촉할 수 있게 조끼를 만들어드리는 건 어떨까? 걸어다니는 홍보 브로셔가 되지 않을까? 아니야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한다고 싫어할거야. 그런데 누가 뭘 들고 있든 상관이 있을까? 오히려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진 않을까? 등등..

어쨋거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전시회에 판촉물을 이유로 찾아오는 노인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과 아직 그들을 모두가 적대하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다음엔 좀 더 많은 분들과 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독수리는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어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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