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은 군인의 노래

2024.07

by 만수당

카투사로 근무하던 한 가수가 있었다. 시대에 저항하는 곡을 많이 써서 그의 편한? 군생활을 보지 못한 어른들의 사정에 그는 전방으로 쫓겨나듯 전출을 갔다. 그런데 거기서 30여년을 근무하던 병기선임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를 만들어달라며 막걸리 2말을 가져와 부탁하였고 1976년 겨울, '늙은 군인이 노래'라는 곡이 탄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민주화운동의 한켠에서 이어져 내려오다 2018년 현충일, 대전현충원 추념식에서 가수 최백호가 다시 부르며 재조명되었다.

대학 시절, 학사장교로 장교임관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학사장교는 4년간 대학생활을 하고 학군교에 가서 6개월 훈련을 받고 3년간 장교로 단기근무하는 제도이다. 간혹 4년간 학비를 대주는 군장학생과 같이 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같은 개념은 아니다. 군장학생이 되면 7년간 복무하여야 한다.

2014년은 을씨년했다.
4월에는 윤일병 사건이, 6월에는 임병장 사건이 일어났다.
소위 군 내 가혹행위에 대해 '참으면 윤일병, 못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많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임관해서 소대장이 되었을 때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 즈음에 썼던 글을 보면 지독한 패배주의까지 보인다.

후배들과 술을 마시다, 텅 빈 학교 대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스산한 가을바람 위로 눈이 잠겨 올 즘에 핸드폰에서 한 노래가 흘러 찬 공기를 매웠다. 왜 하필, 그때 그 노래였을까.

박범신 선생님과 노래방에 가면 이문세 노래만 불러도 '요즘 노래'라며 영 못마땅해하셨다. 나와 한살 차이나는 누나가 목로주점을 불렀을 때 선생님이 좋아하셔서 옛날 노래를 찾아 듣곤 했다. 그런 노래 중의 하나였다.

긴 노래 속, 다른 가사도 아니고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에 가슴이 막혔다.

스스로 군문에 나아가 꽃다운 청춘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임관 포기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학교 학군단 행정관부터 교수님까지 말렸지만 완고했다.
다른 일로 청춘을 빛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내 청춘과 내가 이끌 수십의 청춘을 떠안기 무서워 도망쳤던 날이다.

만약 그 때 그대로 임관했다면, 아마 지금의 삶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집안에서는 장교가 나오는 것이 원이었기에 집안의 반대도 거셌지만 어쩔 수 없이 도망을 쳤다.

'늙은 군인의 노래'를 만든 가수 김민기 선생이 어제 작고하셨다.
극단 학전을 이끌었고 여러 금지곡의 주인으로, 시대를 함께한 거인이 또 이렇게 스러졌다. 삶은 언젠가 끝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가 남긴 여러 이야기도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부고 기사를 접하고 올려다 본 까만 하늘 사이로 십년 전, 가을밤이 요란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721646757078.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갑갑하게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