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사만사

양고기국과 식은 밥

인사만사人事萬史

by 만수당
1722334347999.jpg

춘추전국시대, 지금의 스좌장 지역에 중산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중산은 이민족인 백적의 한 일파가 세운 나라로 강대국인 위나라, 조나라 사이에 낀 약소국이었다. 그런데 전국시대를 다룬 '전국책'에 중산국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때는 기원전 299년경의 일이다. 중산국의 왕이었던 절차는 나라 안의 유명한 선비들을 초대해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거듭된 난리 속에서 선비들을 모아 결속을 유지하고 지지를 올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당시 중산국에서는 따끈한 양고기 국을 만들어 고기와 국물을 선비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선비들이 많아서였을까, 준비한 양고기 국이 사마자기라는 선비 앞에서 뚝 그쳤다. 더군다나 양고기 국을 대신할 다른 것도 사마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자신을 일부러 모욕했다고 생각한 사마자기는 원한을 품었고 중산국의 적대국인 조나라로 건너 갔다. 그는 조나라 왕에게 중산국의 약점을 낱낱히 고하며 정벌을 부추겼고 마침내 조나라왕은 기회라고 생각해 중산국을 공격한다.

조나라에 비하면 작은 나라였던 중산국은 일시에 무너졌고 왕이었던 절차는 허겁지겁 제나라로 망명길에 올랐다. 그런데 평소 대접해주었던 많은 신하와 선비들은 간데 없이 보이지않았고 웬 졸병 둘이 자신을 호위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에 절차는 '다른 이는 모두 과인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어찌 너희 둘만이 창을 들고 나를 따라오느냐' 라고 묻자 두 사람이 말하길 '저희는 친형제로서 옛날 저희 아버님이 굶어죽기 직전, 전하께서 가지고 계시던 식은 밥을 나눠 주시어 겨우 목숨을 건지고 저희를 낳으실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혹시라도 중산국 임금께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가 목숨을 걸고 그 은혜를 갚으라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탄식하여 '내가 한 그릇 고깃국에 나라를 잃었고 한 그릇 식은 밥에 두 용사를 얻어 목숨을 구했구나.' 라고 하였다고 한다.

물론 기록은 전국책에만 나와있고 실제로는 연이은 전쟁 끝에 패망하였다고 하니 이 이야기가 실화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절차와 중산국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꼭 리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적당히 잘 지낸것 같은데 어느 누구는 나를 죽일 놈으로 생각하고 어느 누구는 나를 은혜 갚을 사람으로 생각한다. 최근 창업한 지 5년 이상된 SaaS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문제도 사람의 문제들이다.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회사들에 비해 젊은 분위기다보니 나름대로 복지도 많았고 열정도 많았다. 하지만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매번 우상향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계단형을 띄기에 어쩔 수 없는 정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웃으며 일할 순 없다.

그런데 직원들은 회사가 변했다며 퇴사를 하며 눈물을 보이고, 자신의 꿈이 부정당했다며 저주를 퍼붇기도 한다. 그리고는 잡플래닛이며 블라인드에 들어가 희망이 없다고, 이제 고인물들의 회사가 되어버렸다고 끄적인다.

회사에서 모든 걸 항상 그대로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어제가 좋았다면 오늘은 좋지 않을 수 있다. 어제가 대박이었다면 오늘은 쪽박일 수도 있다. 이건 특별한 사실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요새 몇몇 사람들은 그게 아닌가보다. 항상 행복해야 하고 항상 재밌어야 하고 항상 받는게 많아야 하나보다.

나도 똑같은 근로자의 입장이지만 요새 많이 보이는 리뷰의 내용들은 글쎄.. 라는 생각을 많이 들게 한다. 과연 그만큼 자신이 처절한 노력을 한 번이라도 했을까. 매듭을 풀겠다는 마음으로 새벽이 가도록 자리에 앉아 내 일처럼 고민해봤을까. 그랬는데도 자신이 있었던 직장에 그따위 말을 다른 사람 보라고 자극적으로 적어놓았다면 그건 사이코패스다. 물론 그런 말을 들을만한 상황과 사람과 조직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일터 안에서의 문제는 일터 안에서 푸는 것이 맞지 않을까.

받아먹는 입장에서의 고깃국 한 그릇과 식은 밥 한 그릇은 절대적인게 아니라 상대적이다. 조직원은 누구나 사마자기가 될 수도, 두 청년이 될 수도 있다.

리더들의 두 어깨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시절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