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컵

2025.07

by 유영준


컵은 물을 담는 그릇이다.

컵에는 물 대신 차를 담기도 하고 커피를 담아 마시기도 한다.
다만 맑은 물, 향기로운 차를 아무리 담아도
담을 컵이 물때가 껴있다면 그 물은 결코 맑게 느껴지지 않는다.
괜히 찝찝해서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한다.

조직이란 사람과 전략, 성과가 담기는 그릇이다.
그 안에 아무리 유능한 인재를 넣고, 좋은 전략을 부어도
그릇 자체에 때가 껴있다면 결국 전체는 탁해진다.

나는 이걸 ‘물때 낀 컵’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
차를 마시고 물을 붓고 또 마신다.
겉보기엔 깨끗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컵 안쪽에는 희미한 자국이 생긴다.
그걸 방치하면 금세 물때가 낀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냄새가 나고 물맛이 달라진다.

이게 조직의 관습이다. 처음엔 작은 편의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굳이 고칠 필요 있을까’

그런 말들이 쌓여서 조직 내부에 고착된 방식이 되고 그 방식이 어느새 비효율과 불신, 침묵을 만들어낸다.

관리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선택해야 한다.
물만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컵을 닦을 것인가.

사람을 바꾸고, 전략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나같은 컨설턴트를 부르고,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담는 그릇 자체가 오래 닦이지 않은 상태라면 무엇을 담든 결국 냄새가 난다.

관습은 사람보다 오래 간다.
그 조직의 말투, 회의 방식, 보고서의 형식, 심지어는 문제를 외면하는 방식까지. 이 모든 건 물때처럼 배어든다.

날을 잡고 물떄를 지울 순 없다. 오래된 물 때는 지워지긴 커녕 문신처럼 컵에 아로새겨져있다.
관리자는 매일 컵을 쓰기 전에 들여다보고 작은 얼룩이라도 보이면 즉시 닦아내야 한다.
귀찮고 반복적인 일이지만 바로 이 태도가 조직의 맑음을 지킨다.

인재를 새로 채용해 조직을 다시금 환류시키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하지만 아무리 맑은 물도 물때 낀 컵에 담기면 맑은 향을 내지 못하듯 물 때낀 조직에 포함된 인재 또한 본래의 빛을 잃는다.

의욕 있던 직원이 점점 말이 줄고 주도적이던 인물이 점점 관망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탁한 문화 속에 오래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릇은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경영자를 포함한 관리자는 늘 조직이라는 컵을 점검해야 한다.
외부 환경보다 내부 구조를 봐야 하고
매출보다 일하는 방식을 봐야 하며
성과보다 그걸 만들어내는 문화의 상태를 봐야 한다.

그게 잘 안 보인다면 이미 물때는 깊이 배어들어 문신처럼 박혀버린 후다.

경영은 매일 닦는 일이다.
매일 보는 것, 매일 듣는 것, 매일 신경 쓰는 것.
‘오늘은 괜찮겠지’라고 넘어간 순간부터 물때는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 세제로도, 수세미로도 닦이지 않는다.
그건 곧 조직의 인식이 되고 문화가 되고,
외부에 비치는 우리 회사의 정체성이 된다.

결국 경영자는 ‘컵을 닦는 사람’이다.
자리를 지키는 것, 사람을 보는 것, 관습을 경계하는 것.
이 모든 건 결국 '맑음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적인 수고'다.

조직은 컵이다.
구성원과 전략은 물이다.
관습은 물때다.
경영자는 닦는 사람이다.

오늘 나는 컵을 닦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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