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26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인턴경험도 있었지만 그건 뒤로 제쳐두고.
처음 마주한 센터장님은 56년생. 우리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으셨다. 처음 마주한 나를 경계하시는 눈빛이 역력했다.
하루가 이틀이. 이틀이 한 달이 되어가자
센터장님의 주름진 기억이 나에게도 나누어졌다.
안강지구에서 총알에 관통당한 눈을 뒤로 하고 전투기록이 말소되어 상이군경에 등록되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
결혼하여 겨우 단칸방 신혼살이하면서 서울대다니는 동생과 같이 산 이야기. 그 와중에 어찌어찌 생긴 두 아들.
그때마다 센터장님은 참 어려웠노라 말씀하시곤했다.
달동네 집앞 언덕에서 내려다보며 담뱃불 하나 붙이노라면
저 아래 남산 아래 충무로부터 을지로, 종로까지 그렇게 불빛이 밝았드란다.
'저 아래 집이 저래 많은데 와 내 집은 하나없노'
쓴 웃음 삼키시며 담배도 많이 늘으셨단다.
시간이 지나 더부살이하던 동생은 부행장까지 올랐고 아들들은 잘나가는 PD가 되고 회계사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 헛헛함이 가시지않으신다고 너털웃음 짓곤하셨다.
이제 부족한 것도 더 이룰 것 없어
누구나 그 삶을 보며 부럽다고 말하곤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자리가 서러우셨단다.
그리고 창원에 출장가 호래기 호로록 소주안주로 털어먹을때 센터장님이 벌건 얼굴로 젓가락을 들어 내 잔을 툭 치시곤
"유영준씨.우리 꿈꾸면서 살자. 되도록 불가능한 꿈으로."
"예? 이룰 수 있는 꿈을 꿔야죠~"
"에이. 그럼 재미없잖아. 한평생 갈아넣어도 못이룰 그런 멋진 꿈. 그럼 평생 꿈꾸며 살 거 아이가. 안그나?"
내가 머뭇거리자 앞접시에 완두콩 하나 놓으시며 또 한마디
"콩이 나오고싶어가 나왔겠나. 지도 내몰린거지. 근데 그래 살진 말자. 그냥 안되도 꿈 한번 꾸고살자. 내 헛헛한 기 그때문이라. 꿈을 뭐 시골촌놈이 꿔본 적이나 있겠나."
그 날부터 항상 불가능한 꿈, 이루지 못할 꿈만 마음에 품었다. 오랜만에 술 한잔 짙게 뿌리니 그때 생각도 짙다.
내일은 센터장님께 안부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