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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에서 이쁜이로

2024.06

by 만수당


어제 술을 먹고 기억 속에서 센터장님을 불러일으킨 후, 그 전 인턴시절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에피소드가 없느냐는 DM이 와서 한 기억을 다시 살린다.

장교후보생을 스스로 포기한 후 나는 군대에 늦게 입대했다. 자연스레 전역도 늦었는데 다행히 전역 이후 곧바로 교통안전공단 행정인턴에 붙었다.

다만 소장님은 나를 처음에 탐탁치않게 여기셨다. 당시 내 업무는 자동차검사 접수가 메인이었는데..접수하러 온 고객과 농담따먹기를 하거나 좋은 분위기만든다고 음악을 틀어놓는 인턴이 반가울 리 없었다.

교통안전공단은 서비스 상태확인을 내부 감사도 빈번했고 무엇보다 말 한마디 잘못뱉어 컴플레인이라도 걸리면 골치아팠기때문이다.

소장님의 핀잔에도 난 계속 고객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않았는데 옆에 있던 차장님은 영준씨는 영업해야겠어~라고 하시기도 했다.

그러던 중, 회식일정이 잡히고 소장님께서 내게 장소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기억을 되살려 들어간 첫 주, 첫 회식때 소장님의 선호메뉴를 떠올렸다. 소고기는 생고기로, 구운 고기는 돼지고기만이라는 독특한 식습관이셨는데 나도 같은 습관을 가져 퍽 좋았다.

그런데 회식일정이 다가올수록 그런 식당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사택(당시 소장님과 사택에서 둘이 지냈다.) 인근 고기집을 다 들러 혼자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솥뚜껑삼겹살을 팔며 육회와 육사시미파는 곳이 있었다. 여기다 생각하곤 바로 예약을 했다.

회식날, 다행히 소장님은 식당을 맘에 들어하셨다. 다만 나 혼자 왔던 건 비밀로 해달라는 내 말은 적당히 묻고 사장님이 소장님께 말했다.

직원 참 잘두셨어요~

왜요?

아니 글쎄 지난 주에 혼자와서 삼겹살이랑 육회먹길래 물어봉께 우리 소장님은 돼지는 구워야허고 소는 생으로만 드신다안하요

그 말을 듣고 소장님이 고개를 잠깐 떨궜다가 소맥을 한 잔 말아주시며 웃으셨다. 처음 지어주신 미소였다.

그후 소장님은 부쩍 나를 챙겨주셨다. 본사 재무팀이든 전북지사든 하도 전화해서 인턴치곤 유명했는데 소장님의 칭찬도 한몫했다.

고깃집발품이 촉매가 된걸까. 난 어느새 애물단지에서 이쁜 내새끼가 되어있었다.

회사다니며 발품 팔 것 까진 없다.
다만 말하지않아도 챙겨주는 배려가 다 죽어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난 아직도 고객사에 갈때면 최소한 관련 산업동향이라도 체크하고간다.

그건 잘 팔기위함이 아니라 잘 듣기위함이다.

온세상천지가 다 나의 고객이다.
내 고객의 이야길 내가 듣지않으면 누가 들을까.

조금만 더 신경써줘도 상대는 나를 다르게 보아준다.
그게 세일즈든 정치질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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