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수 백, 수 천 장의 명함을 주고 받는다.
리멤버에 명함을 등록한다고해도 나는 따로 명함첩을 사 명함을 한 장, 한 장 끼워놓는다. 가끔 직장이 바뀌거나 승진해 명함이 바뀐 경우에는 명함첩을 뒤져 그 앞에 겹쳐 끼운다. 이전 명함은 굳이 버리지 않는다. 그 자체로 상대방이 나와 오랜 시간 같이 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명함의 가치를 모를 때에는 리멤버에 저장이 되어있다는 이유로 수백 장의 명함을 후임자에게 그대로 준 일도 많다.
오랜 만에 책상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 명함을 보고 명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직장에서의 첫 명함이 내 손에 쥐어있을 땐 나의 이름보다 회사의 이름이 더 크게 다가왔다. 유영준이 일하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유영준이었다. 정부 기관이었으므로 이는 더 했다.
기관에서 뛰쳐나온 후, 중소기업 생활을 시작하며 명함에서 회사보다 이름의 가치가 조금씩 더 커져가는 걸 느꼈다. 이직한 거래처의 담당자들은 점점 회사가 아닌 유영준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해주곤 하셔서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채워나간다.
어쩌면 명함의 가치는, 자기 브랜딩을 해야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다만 본인 채널의 팔로워가 꼭 많아야 할 필요도, 누구나 아는 강연에 연사로서 앞에 서는 것도, 처음 보는 사람이 날 알아챌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내 이름을 키울 수 있는 순간은 언제고 있기 마련이다. 링크드인에서 모두가 아는 이름이라도 세상 속에서는 여전히 80억 인구 중의 한 명일 뿐이다. 80억이나 되는 변수에서 나 하나를 빛나게 꾸밀 필요는 없다. 다만 나와 함께 마주할 사람들에게 되도록 오래 기억되면 그걸로 좋다.
앞으로 어떤 명함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 앞의 직함이 어떻게 바뀔 지, 그 앞의 회사가 어떻게 바뀔 지도 모르지만
명함 속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건 내 이름 석자인만큼
스스로 떳떳하게 살고 의롭게 살아야겠다.
결국 자기브랜딩의 핵심은 '나 다움'에 있는 만큼,
나 다운 것을 작은 종이조각 하나에 담을만큼 크고 깊게 걸어야겠다.
10년도 더 된, 창업동아리 시절의 명함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 품었던 뜻이 신기루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면 어때, 다시 잡으면 그만인걸.
내 명함의 가치는 내가 살아온 가치와 같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가치를 더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