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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그날 점심 메뉴는 제육볶음이었다

by 만숑의 직장생활

월요일 오전, 사람들이 하나둘 회사 라운지에 모였다.
다들 커피를 따르며 멍하니 서 있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말이 없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기념일 얘기가 나왔다.

“과장님, 기념일 같은 거 잘 챙기세요?”


김 대리가 종이컵을 들고 묻는다.

“기념일이요?”


조 과장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휴, 그 많은 날을 어떻게 다 챙겨요. 살기도 바쁜데. 애 숙제 챙기랴, 출장 가랴… 생일, 결혼기념일, 부모님 생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다 챙기다 보면 달력이 모자라요.”

“그쵸. 그날도 야근하면 그냥 넘어가던데요.”


“저희는 요즘 케이크 하나 사놓고 그냥 그걸로 해요.”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조금 돌았다. 어색하지 않은, 오래된 대화의 리듬이었다.

잠시 뒤 이 과장이 뒤늦게 합류했다. 물어보지 않아도 질문은 이어졌다.

“이 과장님은 어때요? 그런 기념일 같은 거 잘 챙기세요?”

그는 물을 컵에 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잘 못했는데, 요즘은 챙기려고 해요. 기념일이라도 있어야 식사라도 같이 하니까요. 일 년에 그런 날이 며칠 안되잖아요, 10일 남짓하려나?”

조금 뜸 들이다가 말을 덧붙였다.


“부모님 생신도 예전엔 그냥 전화로 끝냈는데,
요즘은 그날엔 얼굴 보러 가려고 해요. 그러지 않으면, 그냥 몇 달이 훅 가더라고요.”

잠깐 조용해졌다. 커피를 따르던 소리만 들렸다.

누가 장난처럼 말했다.


“그래도 챙긴다고 했다가 까먹으면 더 혼나는 거 알죠?”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미리 알림 설정해 놨어요. 하루 전에 ‘꽃 주문하기’ 떠요.”

사람들이 웃었고, 대화는 다른 얘기로 흘러갔다.

잠시 뒤, 각자 커피를 들고 회의실로 흩어졌다. 라운지에는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그날 점심 메뉴는 제육볶음이었다. 누군가에겐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메뉴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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