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합(正反合)”은 철학자 헤겔이 정립한 변증법의 핵심 개념이다. 어떤 하나의 주장(정)이 있으면, 그에 반대되거나 상충하는 다른 주장(반)이 등장하고, 이 두 주장을 종합한 더 높은 수준의 통찰(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추상적인 개념은 사실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회사에서 회의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거의 모든 과정은 정반합의 논리로 작동한다.
다만, 각 조직의 문화나 일하는 방식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다.
1. 정(正): 날카로운 시작은 ‘명확한 주장’에서
모든 일의 시작은 하나의 ‘의견’이다. 그리고 그 의견이 정(正)이다. 중요한 건 맞고 틀림이 아니라, 논리적인 근거와 구조를 갖춘 명확한 주장이라는 점이다.
팀 회의에서 김 과장이 말한다.
“이번 제품 런칭은 젊은 여성 타깃에 집중해야 합니다. 최근 소비 트렌드 데이터를 보면 20대 여성층의 구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곧 정(正)이다. 논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방향 제안.
하지만 이 단계에서 주의할 점은 하나 있다. 주장이 모호하거나 방어적인 경우, 그다음 단계인 ‘반(反)’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끝나기 쉽다. 즉, 정이 날카롭지 못하면 토론은 시작되지 않는다.
2. 반(反): 모든 주장은 다르거나, 틀릴 수도 있다
정(正)이 나왔다면, 다음은 ‘반(反)’이다. 정의 주장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본 의견, 또는 보완해야 할 점을 짚는 의견.
이 단계에서 중요한 건 태도다. 모든 주장은 다를 수 있고, 때론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없다면 정과 반은 끝내 충돌만 하게 되버린다.
김 과장의 의견에 대해 이 대리가 반박한다.
“그런데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0대 직장 여성층의 충성도와 반복 구매율이 더 높습니다.
마케팅 자원을 젊은 층에 몰아주는 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반(反)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다른 관점’을 제시하거나 ‘놓친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의견이다. 좋은 반은 결국 더 나은 합(合)으로 가기 위한 재료가 된다.
3. 합(合): 결국, 더 나은 방향은 충돌 속에서 나온다
정(正)과 반(反)이 충분히 논의되면, 그 둘을 종합하여 더 나은 안을 도출하는 단계, 즉 합(合)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의 주장과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고, 두 관점을 절충한 안이 될 수도 있다. 핵심은, 처음보다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
박 팀장은 두 의견을 듣고 이렇게 정리한다.
“좋습니다. 20대 여성을 메인 타깃으로 하되, 반복 구매율이 높은 30대 직장 여성도 서브 타깃으로 설정합시다. 콘텐츠는 20대 중심으로, 혜택은 30대를 고려한 이중 전략으로 가보죠.”
이것이 합(合)이다.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충돌 속에서 새로운 해결안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또 다른 정(正)이 나오고, 반(反)이 생기고, 합(合)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반복되며 조직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4. 왜 정반합을 이해해야 하는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명확한 주장을 던지는 용기, 의견이 다를 때 상대를 틀렸다 단정하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 충돌을 피하지 않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노력.
이 모든 것은 정반합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정과 반이 충돌하지 않으면, 합은 태어날 수 없다’는 말처럼, 일을 한다는 건 늘 조금씩 부딪히고, 합쳐 나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