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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메질

by 만숑의 직장생활

모두가 지쳐 있었다. 일은 끝없이 쏟아지는데 정리되는 건 없었다. 어제 내린 결정이 오늘 뒤집히고, 느린 진척에 사람들은 서로를 탓했다. 그날도 아침 8시부터 두 시간 넘게 결론 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커피 한 잔 하자며 김 이사가 먼저 나섰다. 나는 뒤따라 나와 뜨거운 종이컵을 손에 쥐었다.


“이사님, 최 책임 왜 그러는 걸까요? 저번에 한 말이랑 정반대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시잖아요. 까먹은 건지, 일부러 그러는건지...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내 말에 김 이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한두 번 봤나요. 이제 놀랍지도 않네요.”

커피를 홀짝이던 김 이사는 담배를 꺼내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는 쫄래쫄래 따라붙어 하소연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갈까요? 이사님은 이런 경험 많으셨으니까... 어떻게 버티셨어요?”

김 이사는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눈가에 묘한 웃음이 스쳤다.


“만숑님, 혹시 ‘메질’이란 단어 알아요?”


“메질이요?”


“대장간에서 쇠를 단단하게 만들 때 망치로 두들기는 걸 메질이라고 하죠.”


“아…”

김 이사는 연기를 다시 내뱉으며 담담히 말했다.


“저는 이런 때를 메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쳐라... 니 맘대로 쳐봐라. 왼쪽 뺨도 대주고, 오른쪽 뺨도 대주고. 맞다 보면 언젠간 끝나거든요.”

그 말에 나는 그만 커피를 뿜을 뻔했다. 예상치 못한 비유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그럼 우리는 계속 맞고만 있어야 된다는 겁니까?”


“견디는 거죠. 이런 상황, 언젠간 끝납니다. 그때쯤엔 사람도 쇠처럼 강해져 있더라고요. 너무 고민 마세요. 앞으로도 이런 일 많을 테니까.”

그때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점점 마음에 박혔다. 쇠가 메질과 담금질을 거쳐 단단해지듯, 우리도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쳐라. 쳐라. 끝까지 버티는 쪽이 누구인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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