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마지막 학기.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번번이 불합격의 소식만 들려오던 어느 날.
전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아침 9시쯤 집으로 들어가는 길. 반대쪽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류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순간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부러움의 감정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나도 시간에 쫓겨서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 직장을 입사하여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에서 준 노트북 가방을 들고 다니며, 스스로가 뭔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그 당시 나의 모습. 당시 김책임님이 "회사에서 준 개 목걸이를 뭐 하러 자랑스럽게 걸고 다녀"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왜 굳이 목에 걸고 다니고 싶었을까.
하나하나 배우는 게 재밌어, 자청해서 일을 더 달라고 하고, 야근을 해도 뭔가 뿌듯했던 그때의 경험들. 어느 새부터인가 그런 나의 마음은 점점 사그라들어졌다.
매일 시간에 쫓기는 출근 시간이 고역이 되고, 사원증은 저 깊은 호주머니 속에 처박아 놓고 다니고, 주말과 휴가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현재의 나.
내가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 달려가야만 하는 직장이 있어 좋다. 깊은 곳에 처박아 놓았지만 언제든지 꺼내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명함이 있어 든든하다. 다시 돌아가서 얽매일 수 있는 직장이 있어서, 나의 주말이나 휴가가 더욱 소중해진다.
오늘도 아침에 헐레벌떡 일어나서 씻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서고, 지하철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릴 때 동경했었던 직장인이 되었구나를 새삼 느낀다.
...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