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가 들어가는 양은 대충 이 정도, 모자라다 싶으면 더
육개장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그것도 장모님께서 해주신 육개장만 좋아해 때 되면 받아와서 소분 냉동을 해놓는다.
김치
아직 장모님께서는 매년 김장을 담그신다. 우리는 김치가 떨어질만하면 챙겨주시는 김치를 날름날름 받아온다. 다른 김치를 안 먹지는 않지만 입맛에 그다지 안 맞아한다. 기왕이면 장모님이 담근 김치.
나는 20살 때부터 자취방을 구해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다. 처음 혼자 살면서 쉬워 보이는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어 먹고, 어려운 반찬은 시장의 반찬가게에서 사 먹고, 그것도 아니면 이 가게 저 가게 배달음식을 주식으로 먹으며 근 10년을 지내왔기에 입맛이 전혀 까다롭지 않다.-입맛이 원체 둔한 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아내는 결혼 전까지 30년의 오랜 기간을 부모님과 함께 지내왔다. 남들보다 뛰어난 장모님의 음식솜씨를 그 오랜 기간 맛보았으니 입맛이 완전히 길들여졌고, 미각 자체에도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는 나물무침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결혼하고부터 음식을 하나둘 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5년 차인 지금은 꽤 솜씨가 늘었고, 어떤 음식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맛도 있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은 음식을 만드는 중간중간 엄마 맛이 안 난다고 툴툴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 부모님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웬만한 분들은 다 감으로 양념을 넣을 것이다. 다 손 맛이라지 않은가.
소금 대충 이 정도, 고춧가루는 조금 많이, 참기름은 한 바퀴 정도.
아니면 반 숟가락 정도 넣고 맛보고 더 넣고, 숟가락 두 스푼 넣고 모자다 싶으면 더 넣고.
아내는 장모님께 음식 만드는 법을 물어보려 전화를 드려도, 양념을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해 애를 먹는다.
"당신 좋아하는 음식들은 장모님이 만드실 때 옆에서 한 번 지켜봐 봐. 그리고 당신이 알아볼 수 있게끔 어디다가 미리 적어놔."
보다 못한 내가 아내에게 한 마디 했다. 그 뒤로 아내는 종종 장모님 옆에서 만드시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내가 장모님 옆에 서서 보기도 한다.
아내가 주방에 서서 맛이 안 난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꾸 몸 여기저기가 아프시기도 하고,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체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늘어나는 장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입맛이 변하고 기력이 떨어져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지 못하실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오면 아내는 그리워할 것이다.
아무리 똑같이 배워 따라 한다고 해도 맛은 달리 느껴질 것이다. 장모님의 사랑이 담기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고 달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아내의 등을 떠밀기도, 아니면 내가 옆에 서서 음식 만드시는 모습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