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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11. 2016

<자본주의를 구하라> 결국 경제가 아니라 정치?

For the Many, Not the Few


이 책은 북스터디에서 발제를 맡은 Opelia 덕분에 요모조모 살펴볼 수 있었다. 나도 원서 표지 챙겨보는 편인데 그도 두 표지를 비교하며 시작했다. For the Many, Not the Few, 자본주의 구하기. 와닿는 구절.

청년 로버트 라이시는 다트머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웰슬리대학의 여학생 힐러리 로드햄과 데이트를 했다. 수재들만 받는다는 로즈 장학금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이 무렵 같은 로즈 장학생이던 빌 클린턴과 만났다. 이후 빌과 힐러리, 로버트는 예일대 로스쿨을 함께 다녔다고. 그는 법원에서 law clerk 으로 일을 시작했고,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FTC의 Director 로 임명되어 정책기획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단에 섰다가... 하여간에 진정 잘 나가던 인물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오바마 당산자의 경제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리고 클린턴 부부와의 오랜 인연에도 불구하고 버니 샌더스 지지자로 활약했다. Robert Reich explains why he endorses Bernie Sanders despite Clinton ties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생애를 보다보니, 이런 인간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놀랍다. 이런데 놀라는 나도 놀랍지만. 그의 책은 십 수년 전 <부유한 노예> 이후 처음. 나는 가끔 그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최고의 학자, 잘 나가던 관료, 열혈 운동가인 그의 목소리를 여전히 신기하게 받아들인다.

잘 생겼다! 그런데 키가 작아 베트남전에 참전 못한 분. 참고로 입대 기준이 5피트(약 152cm)였다고.


힘센 자본이 자본주의를 망치는 주범


그가 자본주의를 걱정하는 건, 자본의 힘이 갈수록 커지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치를 강자들의 룰로 바꾸기 때문이다. 엄청난 로비자금이 판을 움직이고, 관료들은 비싼 몸값에 로비스트로 변신하는 구조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힘과 자원을 소유한 이는 공무원을 직접 매수않는다. 대신 선거후원금을 기부하고 관직에서 물러나면 고소득 일자리를 약속한다. 양측이 주고받는 시장 규칙은 모든국민에게 적용되고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불균형하게 특권층에 유리하다.

예컨대 2014년 미국은 망 이용료가 가장 비싸고 속도는 느린 나라다. 2013년 컴캐스트 로비 비용은 1900만달러로 방위사업체 보잉과 록히드마틴을 능가했다. FCC 의장 파웰이 로비회사 수장으로 옮겼고, 14년 컴캐스트 로비스트 126명 중 104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1990년대 미국은 MS 익스플로러 끼워넣기를 제소했지만, 상황은 바뀐다. 2013년 기준 로비 비용을 보면 애플 337만달러, 아마존 345만달러, 페북 643만달러, MS 1049만달러, 구글은 1580만달러를 썼다. 2012년 FTC 실무진은 구글 제소 보고서를 냈지만 묵살됐다.

미국 제약회사들은 특허 만료 시점에 사소한 걸 바꿔서 특허를 갱신한다. 약이 비싸 2012년 5000만명이 처방약을 못 샀다. 그중 1/4는 만성질환자. 비싼 약을 처방하는 것과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의사들이 2013년 5개월간 제약회사로부터 받은 강연료, 자문비 등은 3.8억 달러에 달한다. 그 해 제약회사 로비 비용은 2.25억 달러. 군수업계를 앞질렀고, 선거후원금 3600만 달러는 별도로 냈다. 그래서? 미국 국민들은 제약회사의 담합으로 인해 연간 35억 달러를 더 부담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거대 기업 몬산토는 미국 콩의 90%, 옥수수 80%의 유전형질 주인. 농부들은 씨앗이 남아도 해마다 씨앗을 새로 사야 한다. 씨앗 값은 2001년 이후 2배로 뛰었다. 독점 기업의 횡포라지만, 몬산토 역시 2013년 700만 달러를 로비에 썼다.

파산법조차 대기업에게 유리하다. 부자는 잘못 되어도 파산제도로 재산을 보호하는데, 학자금이나 주택 대출을 받은 이는 파산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2003년 아메리칸 항공 CEO 도널드 카티는 파산 가능성을 무기로 위협, 노조에게 20억 달러의 급여를 양보받으면서 임원 퇴직금만 따로 보호하는 신탁을 활용, 자신은 1200만 달러를 챙겼다.



더 세지고 부유해진 유전무죄 부자들

 

대기업 CEO 보수는 50년 전에는 일반 근로자의 20배였지만 지금은 300배에 달한다... CEO 급여는 1978년부터 2013년까지 937% 상승했지만 일반 근로자는 10.2% 증가했을 뿐이다.

AIG의 CEO 마틴 설리번은 재직 당시 주가가 98% 감소하고 미국 납세자들이 구제금융으로 1800억 달러를 지원해야 했는데도 퇴사하면서 4700만 달러를 챙겼다. 2006년 스톡옵션 비리로 유나이티드헬스 CEO직에서 사임한 윌리엄 맥과이어는 2.8억 달러의 급여를 받았다.. "수치스러운 CEO의 명단은 나열하다 보면 끝이 없다"고. 그런데 일반 납세자들이 CEO의 막대한 급여를 지원한다는 주장은 더 기가 막힌다. 기업이 CEO 급여를 소득세에서 공제받으면 결과적으로 차액을 메우기 위해 나머지 대중은 세금을 더 많이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예컨대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는 2013년 급여 150만 달러에 스톡옵션 등으로 1.5억 달러를 받았는데, 덕분에 스타벅스는 세금 8200만달러를 '절약'했다.

의사를 매수해 비인가 진통제를 처방하도록 한 제약회사 화이자는 12억 달러를 물었지만,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10대가 마리화나 30g를 팔다가 체포되면 몇 년 형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자들과 달리 시민은 약해졌다. 50년 전 미국 최대 고용주였던 GM의 근로자 시급은 35달러. 2014년 최대 고융주 월마트 직원들의 시급은 9달러다. 라이시는 "50년 전 GM엔 강력한 노조가 있었던 반면 현재 노조가입률은 3분의 1로 줄어든 7%"라고 원인을 분석한다. 주주만 중요하다는 개념이 1980년대에 등장한 이후, 주주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이유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산을 매각하고, 공장 문을 닫고, 부채를 더 끌어들이고, 직원을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본질적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빈곤층은 야망이 없으므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빈곤층에게 정말 없는 것은 기회이자 기회를 포착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이다. (188쪽)


저자는 "경제 엘리트들이 경제 체제의 기본 규칙을 지배하므로, 그 이면에 놓인 정치적 힘의 분배 방법을 바꾸지 않고서 경제 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프린스턴대 마틴 길렌스 교수와 노스웨스턴대 벤저민 페이지 교수는 1799건의 정책을 상세하게 분석한 뒤 "일반 미국인이 공공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작아서 제로에 가깝고 통계로도 무의미해 보인다"고 2014년 발표했다고 한다. 단순히 부자들이 힘이 세진게 아니라, "대항적 세력이 쇠퇴했다"는게 문제. 노조는 물론 소형 소매업체, 농업협동조합, 지역은행 등이 모두 힘을 잃었다.


오바마 행정부도 미국 역사상 가장 친기업적 정부인데.. 민주당 관료들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클린턴 행정부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은 원래 골드만삭스 회장이었고, 공직에서 물러난 후 시티그룹 실행위원회 회장으로. 오바마 행정부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는 사모펀드 워벅 핀커스 회장으로 월스트리트로 돌아갔다. 가이트너 후임 잭 루 재무장관은 시티그룹 출신이고, 예산관리국장 피터 오재그는 시티그룹으로 갔고.... 그래서? 오바마 정부는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에 호된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고, 주식 시장을 붕괴시킬 뻔했던 과잉 행동에 대해 월스트리트 고위 임원을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으며, 찬성했다면 연간 세수 수백억 달러를 창출하고 프로그램 매매를 억제했을 금융거래세 소액 부과 계획에 반대했다. 



부와 힘의 상향 분배를 끝내자


책 후반부 챕터 제목이다. 기업과 금융 엘리트 집단이 특허와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을 확대하고, 조제약, 첨단기술, 생명공학, 연예산업 기업의 이익은 증가하는 반면 일반 소비자가 치르는 대가를 늘린다. 소비자 소득 일부가 고위 임원과 주주에게 상향 재분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철도와 석유 트러스트가 경제를 장악했던 과거와 비교해볼 때, 구글 애플 페이스북 컴캐스트 같은 기업이 네트워크와 플랫폼,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한 최근의 구조도 독과점 폐해를 고스란히 반복한다. 이같은 구조를 바꾸자는 얘기다. 예컨대 특허권과 저작권 보호 기간을 줄이자고. 반독점법은 원래 취지로 돌아가 소비자 이익을 최대화하고 경제적 힘을 가진 주체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소시켜야 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월스트리트의 거대 은행은 국가 은행 자산의 5% 이상을 보유할 수 없고, 초기 주식 공모에서 지배적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직원과 하청업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강제 중재를 강요 못하도록 계야법을 정비하고, 일반 대중이 입수할 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주식 매매는 모두 금지하고, 극초단타 주식 매매 기업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기술을 다른 트레이더와 의무 공유하고..오스트레일리아처럼 CEO 급여를 제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최저임금은 중간 급여의 절반까지 인상하고 그 후 인플레이션에 맞춰 조정하고..

마지막으로 사회에 만연한 상향 재분배 체제의 중요한 측면인 교육 자원은 현재와 다른 방식으로 할당되어야 한다.


저자는 독일 사례도 언급한다. 독일 법인법은 공동 결정 codetermination 조항을 넣어 경영 이사회에는 일일 업무를 감독하고, 감사회에 더 높은 차원의 결정을 내리는 임무를 부여한다고. 기업 규모에 따라 감사회 이사의 절반까지 주주가 아닌 직원을 대표한다고. 노동자 협의체도 현장 직원을 대표, 근로자 권리를 미국보다 훨씬 민감하게 보장한다고. 이 내용은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속고 살아온 불편한 진실 에 잘 나온다. 새삼 돌아본다.



기승전 기본소득


저자는 경제 성장의 몫을 국민 전체에게 확실하게 분배하는 방법으로 기본 소득을 제안한다. "이 방법은 생각만큼 급진적이지 않으며, 1979년 보수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주장"했다고. 사실 아무리 로버트 라이시지만, 사실 결론이 딱히 반짝이지는 않는다. 부와 힘의 상향 분배를 끝내자는 챕터의 주장은 아직은 당위로 보인다. 시민 중심 대항세력을 키워 저걸 달성하자는 정치적 구호다. 기본소득이 나오는 무렵에는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 미래에 대한 대비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낯설지 않은 주장인데, 사실 달리 대안이 없는건 로버트 라이시조차 마찬가지인가 싶다. 얼마전에 읽은 <디지털 디스커넥트>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의 저자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도 디지털이고 뭐고 민주주의가 망가지는게 문제라고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솔루션은 좀 황망하기도 했다. 공공미디어에 대한 정부 지원과 비영리 미디어를 후원하는 세금공제 바우처 제도라니. 그런데 모두가 문제를 인정하는 시대, 쌈빡하고 근사한 솔루션을 딱딱 내놓을 수 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이 전문가 쌤들이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결국 이렇게 가야해, 라고 말하는데 어느 정도 마음이 따라간다. 정답이 보이지 않지만 해답을 찾아가야 하는 시대. 해보지 않을 이유보다는 해야만 하는 이유가 훨씬 많다. 요즘 이런 종류의 책을 꽤 봐서 그런지 흐름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사실 희망이 없지도 않다. 북스터디 토론하다 말고, 옛날 글을 하나 펼쳤다. <망중립성> SNS 여론 vs 수천억 로비 망중립성 막으려고 통신사들은 무려 2.38억 달러를 로비에 썼다. 그런데 나쁜 조항으로 꼽히던 Fast Lane은 사실 무산됐다. FCC 게시판에만 100만 개의 의견이 달렸다. 통신사들은 돈을 썼지만, 망중립성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더 뜨거웠다. 포르노 스타들이 설명하는 망중립성 동영상까지 나올 정도로 거대 자본의 힘과 맞서 사람들이 움직였다. 물론 구글이 만만찮게 로비 자금을 썼고, 오바마 정부는 구글 편이었던 측면도 있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 별로 다른 답이 없다. 자본주의를 구하려면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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