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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16. 2016

<유에서 유> 전투사회, 이런 아침


우리 중 하나는 이제 떨어진다는 거죠?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만 중요했다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가 아니야
떨어지다지

......

하나만 남았다
나만 남았다


오늘부로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일이 없게 된다


#오은 시집 #유에서_유 중  <서바이벌>에서 발췌 


김연지 (Yeonjea Kim) 님 덕분에 시를 읽는 밤을 보내고..


아이는 요즘 7시 등교. 토, 일요일에는 8시. 70시간 독서를 위해 평일 1시간, 주말  4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야 한단다.강제는 아니지만 문과 학생은 대부분 신청. 학생증으로 출입을 체크, 독서시간을 잰다고 한다. 내키는대로 읽는 즐거움도 사치


일요일 아침인데도 일찍 일어난 아이는 샤워에만 30분이 걸렸다. 덕분에 준비한 아침도 먹지 못했다. 햄치즈 샌드위치는 쿠킹호일에 싸들고 갔다. 샤워하다가 또 졸아버렸을 터. 왜 이렇게 샤워를 오래하냐고 한 소리 했더니 마음이 무겁다. 너무 힘들게 산다.


일요일 오전 8시 한산하다기보다 스산한 학교 골목에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허허롭다. 


#전투사회 라는 태그를 달아, 저 시를 인용해봤다.



<다움>    

......       


인사를 잘해야 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받아쓰기는 백 점 맞아야 해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    

밤에 혼자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해    

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해     

대신, 집안 부끄러운 일은 쓰면 안 돼    

거짓말은 하면 안 돼                 


학점을 잘 받아야 해

꿈을 잊으면 안 돼

대신, 현실과 타협하는 법도 배워야 해

돈 되는 것을 예의 주시해야 해

돈 떨어지는 것과 동떨어져야 해


......


뭐든 잘해야 해    

뭐든 잘하는 척을 해야 해    

나를 과장해야 해    

대신, 은은하게 드러내야 해    

적당히 웃어넘기고 적당히 꾀어..    

눈치를 잘 살펴야 해    

눈알을 잘 굴려야 해    


다움은 닳는 법이 없었다    

다음 날엔 다른 다움이 나타났다

꿈에서 멀어진 대신,    

대신할 게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비밀처럼


다움 안에는

내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속내가 슬쩍 슬쩍 드러난다. 우리 안에 차곡차곡 오래 쌓은 규범들, 겉 다르고 속 다른 우리 '다움'



<말실수>            


한 사람은 말만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실수만 기억한다                


한 사람은 말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은 말의 뉘앙스만 기억한다                


표정은 알고있었다    

말이 어디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는지..                


마음은    

말의 어느 구절에도 없었다                


대개 다 그렇다. 언제나 그렇다. 말이 무섭고, 내 말의 유려함에 당황하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믿지 못할 지경일 때도 있는데, 남의 말인들.


<아찔>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니 그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할 말이 없는 표정이었다.     


#유에서_유 #오은 시집을 선물받은 가을이다. 멋진 ㅇㅈ님 고마워요.   


시집은 선물 받은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비정한 시대에 시가 마냥 행복하다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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